주낙영<br>경주시장
주낙영
경주시장

2020년 10월 28일은 경주시에 있어서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40여 년간 경주시민들의 지역 최대 숙원이었던 천북면 신당3리 한센인촌 ‘희망농원 환경개선’을 위한 길이 마침내 열렸기 때문이다.

이날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과 이철우 경북지사, 이강덕 포항시장, 주대영 대구지방환경청장, 희망농원 주민들이 함께 희망농원 현장을 방문하고 기관조정 회의를 열어 ‘희망농원 환경개선’사업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희망농원은 1979년 보문관광단지 개발 당시 현재의 위치로 136가구 486명이 강제이주돼 양계를 위주로 생업을 유지해 왔다. 그동안 무허가 주택에서 거주하면서 노후화된 계사의 슬레이트 지붕에서 나오는 1급 발암물질과 악취, 해충, 오염수 배출 등 생활환경이 열악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여기에 계사 축분과 오염된 생활하수가 포항시민들의 식수원인 형산강으로 흘러들어가 많은 피해를 발생시켰다. 강제이주 당시 정부에서 지어준 주택과 계사가 무허가 건물이다 보니 태풍과 홍수 같은 각종 자연재해를 입어도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하는 등 한센인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그동안 청와대, 국회, 여러 정부기관에 수차례 탄원서를 제출하고 문제해결을 호소하는 등 백방으로 뛰었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그런 세월이 무려 40여년, 경주의 한센인들은 정부의 외면과 여러 관계 부처가 연관되어 해결에 나설 주체가 없다는 핑계로 돛대를 잃은 채 표류하는 난파선처럼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이란 없고, 다만 절망에 이르도록 방치하는 상황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경주시는 포기하지 않고 희망의 불씨를 계속해서 지펴왔다. 민선7기 경주시정이 이 문제 해결에 반드시 마침표를 찍겠다는 굳은 각오로 전 행정력을 동원해서 매달렸다.

다시 한 번, 한센인은 물론 경주시민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힘을 모았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끈질기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 이 사안을 종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곳이 국민권익위원회라는 판단에 이르렀다. 문제해결의 열쇠를 찾은 것이다. 곧바로 권익위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 3월 31일 권익위에 최초로 민원을 접수하면서 문제해결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권익위 주관으로 환경부를 비롯한 6개 기관이 모여 협의를 가졌다. 연이어 9월까지 관계기관이 다섯 차례의 현지조사와 실무협의를 거쳤다. 마침내 10월 세부조정안을 마련하고 조정일시를 잡으면서 희망농원 환경개선에 ‘희망’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40여 년간 복잡하게 엉켜있던 실타래가 드디어 풀리게 된 것이다.

이번 기관조정회의의 핵심은 낡은 집단 닭 사육 시설과 폐슬레이트 철거, 노후 침전조, 하수관거 재정비를 위한 국비 210억원을 중앙부처에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라 경주시는 우선 내년 상반기까지 철거와 재정비를 위한 기본정비계획을 수립하고 희망농원 주민들과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노후 주택정비 등 거주여건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친환경 농작물 재배와 새로운 일자리 및 농가소득 창출을 위한 기반 조성, 한센 요양원, 복지시설, 생태공원 등 주민들을 위한 종합정비계획도 차례로 마련될 것이다. 경북도와 포항시, 대구지방환경청도 예산 확보와 적극적인 행정지원을 통해 신속하게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보태기로 약속했다.

우리 민족 역사의 뿌리이자 문화의 중심인 이곳 경주는 이천년 동안 숱한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경주시민의 위대한 정신으로 지켜온 곳이다. 신라 천년을 지켜온 호국정신이 그랬고, 인간존중과 만민평등의 정신을 내세운 동학정신의 태동이 그랬다.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실천한 최부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를 굳건히 지켜온 버팀목이 되는 사상과 지혜가 이곳 경주에서 시작되고 이어져 왔다.

경주 한센인촌 희망농원 환경개선 사업도 그런 지혜와 역량으로 가능했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다가오는 2021년도 26만 경주시민이 계속해서 만들어갈 역사적인 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