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암 근처의 마당바위. 주사암은 경주시 서면 도계서오길 251-355에 위치해 있다.

오봉산은 신라 선덕여왕 때 백제의 군사들이 여근곡(女根谷)에 숨어 있다 격퇴된 곳이며, 부산성(富山城)이 있어 경주의 서쪽을 방어하는 중요한 군사요충지였다. 뿐만 아니라 화랑 득오곡이 죽지랑을 그리워하며 ‘모죽지랑가’를 지은 곳이기도 하다. 그 오봉산 정상 아래 숨어 있는 주사암을 찾아 산길을 오른다.

‘53 선지식의 돌탑’, ‘번뇌가 사라지는 길’이라는 팻말과 작은 돌탑들이 썰렁한 겨울 산길을 밝힌다. 섬세한 손길은 이내 담력시험이라도 치르듯 53굽이의 아찔한 경사길로 이어진다. 조금만 방심하면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산길을 비틀거리며 차가 오른다. 마주 오는 차와 교행할 수 있도록 중간중간 길어깨를 만들어 놓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겨울 응달에 기대선 나목들의 침묵, 그 사이로 얼어붙 듯 숨죽인 허공이 우리를 지켜본다.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친견하기 위해 거쳐 간 험난한 과정을 떠올리며 내 나약한 숨결에도 기도가 실린다. 산 위 주차장에 이르렀을 때, 스피커에서 마중 나온 염불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불국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때 의상 대사가 창건한 주사암은 투구모양을 한 오봉산 정상(685m) 바로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주사암은 풍수지리학적으로 투구의 안쪽에 들어가 있는 형국이라 에너지가 빠져나가지 못한다고 한다. 절 입구 양쪽에는 커다란 석문이 불이문 역할을 하며 서 있다.

조심스럽게 경내로 들어선다. 작은 법당 뒤로 투구 모양의 바위가 주사암을 보듬고 앞으로는 부산성이 든든하게 막아주고 있다. 활짝 열린 법당문 안으로 겨울 햇살 홀로 부처님 진신 사리를 친견하고 나는 염불 소리에 젖어 산사의 풍경에 몸을 맡긴다.

산악용 자건거를 탄 남자가 안장에서 내리지 않고 법당 앞까지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평화롭던 공기는 달아나고 말았다. 잠시 인드라망의 그물이 출렁이며 파동을 일으킨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마당 바위 쪽으로 사라지는 그의 당당한 발걸음과 근육질 몸매가 안쓰럽다. 상호 배려와 겸손의 깨달음은 그토록 멀고 힘든 것인가.

경내를 둘러보다 나도 마당바위로 향한다. 까마득한 절벽 위, 툭 트인 산과 허공을 배경삼아 자전거로 한껏 멋을 내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 근처에 ‘드라마 선덕여왕 촬영지’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날렵한 동작으로 무술을 연마하는 화랑들의 기상이 들릴 듯 하고, 주사암 설화 속에 등장하는 좌선 중인 도인의 모습도 아른거린다.

저 너른 허공의 품에 안겨 나도 참선하듯 앉아 있고 싶다. 조용한 날 다시 오리라 마음먹고 돌아오는데 어느 보살님이 국수공양을 하고 가라며 인사를 건넨다. 매주 일요일은 무료로 국수공양을 한다는 안내문이 생각났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소박한 건물을 바라보다 용기를 내어 들어섰다.

공양간을 가득 메운 사람들, 그 사이로 국수를 삶아 건져내느라 분주한 봉사자들이 보인다. 그저 받기가 조심스럽다. 국수에 육수를 붓고 갖가지 고명을 얹어 구석진 자리에 앉는다. ‘몸과 생각이 자유로워지는 곳. 이 공양 받으시고 하루빨리 도업 이루소서’ 걸어놓은 현수막에서 주사암의 마음을 읽는다. 귀한 음식을 앞에 놓고 고작 ‘오관게’를 읊고 있는 나, 편안함에 길들여진 마음조차 남루하다.

담백한 육수와 갖가지 고명이 어울린 국수에서 정갈한 산사 맛이 난다. 주지 스님이 어떤 분인지 뵙고 싶다. 삶의 근간인 밥의 힘을 알고 사람을 제대로 섬길 줄 아는 분이리라. 산문 걸어 잠그고 참선하는 수행에도 높은 뜻이 숨어 있지만 대중들과 호흡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수행은 세상을 좀 더 낮고 가깝게 만들 것이다.

뒤늦게 대웅전 법당에서 백팔 배를 올린다.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 보살행을 실천하는 불자들의 짧은 인사가 문턱을 넘나들고 겨울 햇살이 내 등을 어루만진다. 진정한 보살은 의지하는 것이 없어 즐거움이나 기쁨을 구하지 않으며, 선정의 결과로 색계천에 태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긴 겨울 앞에 선 암자가 쓸쓸해 보이지 않는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주지 스님을 친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서구적인 외모와 소탈한 인품의 효웅 주지스님은 어디에도 걸림이 없다. 산문 근처에 목사님의 시를 걸어놓을 정도로 열린 마음을 가진 분, 53굽이의 산길을 손수 청소하고 불자들을 맞으며 무료공양 해 오신지가 벌써 5년째라고 한다.

스님은 무료공양의 덕을 옆에 앉은 송경규 회장과 봉사자들, 소식을 듣고 다시마와 국수를 보내주시는 분들의 공으로 돌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 송 회장의 맑은 눈빛과 동안의 비결을 알 것 같다. 주사암과 스님에 대한 애정이 보살행으로 이어진 것인지, 그의 보살행으로 주사암과 스님을 사랑하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선지식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묵묵히 선업을 닦는 사람들을 통해 부처님은 오시리라. 이곳에서는 높고 낮음, 삶과 죽음, 차안과 피안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보름달이 뜨면 마당 바위에 도인처럼 앉아 계실 효웅 스님을 떠올려 본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적막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