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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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을 버티고 산과 들에서 피어나기 시작하면 이젠 봄이 막 끝나고 여름이 시작됨을 알리는 꽃이 있다.

이름 그대로 인동초(忍冬草)! 인동초는 기나긴 겨울을 버티고 햇살 바른 양지의 돌담에 기대어 한 겨울에도 상록의 이파리를 간직하고 있다가 봄이 되면 개나리 진달래에게 선두권을 양보하고 서서히 피어올라 진한 봄을 알린다고 한다. 끈질김과 양보의 미덕을 가지고 있다는 인동초는 폐질환에 좋다고 알려져 한방에서 약초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인동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표적 별명이기도 했다.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대통령에 당선 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2021년 초 임기기 시작되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지난주 끝났다. 아직 현직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불복을 선언하고 있지만 결과가 바뀔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번 미국 대통령 당선자 민주당 바이든 후보에게 미국판 ‘인동초’라는 별명이 붙고 있다. 1942년생 바이든은 변호사 출신으로 만 29세의 나이로 1972년 미 델라웨어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도전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의 전폭적 지지를 받던 공화당 거물 케일럽 보그스 현직 의원을 상대로 1% 포인트 차, 극적인 대역전극을 펼치면서 단숨에 정계의 주목을 받았다.

최연소 상원의원, 탄탄대로가 펼쳐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기쁨은 한 달도 채 가지 않았다. 큰 교통사로고 부인과 딸을 잃었고 두 아들도 중상을 입었다. 그는 병간호를 위해 상원의원 취임도 포기하려고 헀지만, 주변의 만류로 병실에서 상원의원 취임 선서를 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는 내리 6선에 성공한다. 그리고 바이든은 대통령에 도전한다.

1988년 첫 대선 도전에 나섰다가 연설문 표절 의혹으로 중도 하차했고, 지난 2008년 대선 때는 오바마·힐러리 ‘2파전’ 속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바이든 후보에게 희망은 아들들이었다. 특히 큰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다고 한다. 실제로 장남 보 바이든은 이라크 전쟁에 참가해 훈장을 받았고, 정치에 입문해 지난 2006년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장남이 자신이 못이룬 대통령의 꿈을 대신 이뤄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 장남은 2015년 뇌종양으로 46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부인, 딸, 아들을 계속 잃은 바이든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 자식을 먼저 보냈던 필자 자신은 너무도 잘 이해한다. 그 힘든 시간을 견딘다는 것은 거의 극한의 정신적 고통과 싸워 이겨 내야 한다. 그는 그러나 버텨냈다. 올해 경선에서도 초반에는 거듭된 참패로 조기 사퇴론에 시달렸지만, ‘슈퍼 화요일’에서 대승을 거두는 역전 드라마로 결국 경선 승리를 굳혔다. 뉴욕타임스는 “첫 주요 공직을 맡은 후 대선후보가 되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후보는 없었다”면서 “정치적 인내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민주당과 공화당, 진보와 보수, 그리고 바이든과 트럼프, 정당이나 인물에 대한 호불호는 각자의 판단이지만 바이든이 보여준 인동초 같은 불굴의 정신은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정신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