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수 경
까마귀 걸어간다
노을녘
해를 향하여
우리도 걸어간다
노을녘
까마귀를 따라
결국 우리는 해를 향하여
해질 무렵 해를 향하여 걸어가는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해 뜰 무렵 해를 향하여 걸어갔던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나이 어려 죽은
손발 없는 속수무책의 신들이 지키는
담장 아래 살았던 아이들
단 한 번도 죄지을 기회를 갖지 않았던
아이들의 염소처럼 그렇게
(….)
이 시에서 노을 퍼지는 시간 까마귀를 따라 해를 따라간다든가 해 뜰 무렵 해를 향해 걸어간다는 것은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인간이란 결국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고, 한 번도 죄를 지을 기회를 갖지 않았던 어린 아이들마저도 그런 운명의 바퀴를 굴리며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라는 시인의 어두운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