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지난 주말 포항지역의 연일향교에서는 다소 특별하고 이색적인 백일장이 열렸다. 타임머신을 타고 몇 백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 조선시대의 과거시험 같은 시문(詩文) 겨루기와 시상식 등을 옛 과거장의 모습으로 재현하는 보기 드문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대과 과거제도의 형식을 빌어 치뤄진 백일장에 급제한 33명의 초등학생들은 갑과, 을과, 병과 등 수상 훈격에 따라 고유한 어사복으로 갈아입고, 특히 장원급제생에게는 연일향교 전교(典校)가 직접 교지(敎旨) 형태의 족자 상장과 어사화를 하사하는 등 시종 이채롭게 진행됐다. 또한 하마비(下馬碑)가 세워진 행사장 입구에서는 호패, 장명루(오색팔찌) 만들기와 가훈, 좌우명, 부채 써주기 등의 다양한 전통체험코너가 함께 열려 다채로움을 더했다.

이러한 일련의 장면들은 문화재청이 2014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향교서원 문화재 활용사업’의 일환으로 (사)한국예절녹색교육원이 주관하고 포항시와 연일향교가 후원한 ‘과거제 재현 제1회 어린이 백일장’의 다양한 모습들이다. 이번 백일장은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을 우리 고장의 자랑스러운 선비임을 재인식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포은 선생의 충효예의를 표상으로 하여 인성과 재능을 길러 장차 나라의 동량이 될 수 있는 동기부여를 주기 위해 개최됐다.

선현의 얼을 기리고 충효예절과 인성지도로 전통과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나가는 한국예절녹색교육원의 기획과 노력이 돋보인다. 한국예절녹색교육원은 수년 전부터 연일향교와 연계하여 충효예절학당, 선비체험, 시(詩)가 있는 야(夜)한 향교, 전통혼례, 인문학콘서트 등의 다양한 ‘살아 숨쉬는 연일향교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지역민들과 호흡하며 체계적이고 밀도 있게 추진하고 있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으로, 여러 성현들을 배향(配享)하며 한국 유교문화를 대표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훌륭한 문화유산을 시민들에게 개방하여 다양한 문화체험활동과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일은 향교나 서원이 지닌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현대에 맞도록 새롭게 재해석하여 전통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

옛것이고 오래된 것이라 해서 방치하고 보존에만 급급해하기 보다는 지역과 특성에 맞는 문화적인 아이템이나 콘텐츠로 개발, 접목하여 문화유산의 활용도와 가치를 높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전통이나 구습들은 지루하고 딱딱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사회 전반에 참으로 가까이 와있고 깊게 스며든 우리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이나 문화는 우리 스스로 아끼고 가꾸고 지켜나갈 때 그 가치와 생명력이 유지될 수 있다. 뿌리 약한 나무는 이내 시들고 말라버리듯이 전통의 기반이 취약해지면 저력과 자생력이 약해진다. 가뜩이나 움츠러들고 어려운 때, “장원급제 납시오!” 같은 외침이 가뭄의 단비 같이 지역사회의 문화마당에 울려 퍼졌으면 한다. 아울러 전통의 현대화를 통해 난국을 타개하는 희망과 위안의 손길이 문화 속에서 피어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