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 들 때 심심하다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이불에 나란히 누워있는 4남매에게 엄마는 매일 이야기를 지어 들려줍니다. 방귀 공주, 코피 공주 등 즉흥적으로 지어낸 이야기에 아이들은 까르르 넘어갑니다.

“자연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터전이다.” 아이가 노트에 적은 글귀입니다.

아이의 이름은 전이수. 이미 그림책을 세 권이나 쓴 꼬마 작가입니다. 제주의 자연을 만나면서 이수의 감성은 날마다 꽃피우고 있지요. 철학적인 사고, 뛰어난 감수성, 문학적 구성 능력 등 이수는 끝없는 잠재력으로 세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아이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니까 책을 많이 읽혔느냐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우리 집엔 책이 거의 없어요.” 이수 엄마는 말합니다. 아빠가 사 준 중고 전집 한 세트가 전부라고 합니다. 어릴 적에 책을 많이 읽혀야 한다는 부모들과 다른 철학을 가진 부모입니다.

“나태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게으른 상태라면, 느림은 삶의 매 순간을 구석구석 느끼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선택이다”

느림의 미학을 강조하는 피에르상소의 말입니다. 무엇 하나라도 더 집어넣으려 애쓰는 보통의 부모에게 낯선 개념이지요. 엄마가 더 잘 해보려는 의욕으로 가득한 두 손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아이들이 마음껏 성장합니다.

텅 빈 공관을 아이들에게 허락해야 합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책은 몇 권 없지만, 이수 엄마는 텅 빈 캔버스를 마련해 이수가 마음껏 그릴 수 있게 합니다. 집안이 엉망 되어도 밀가루를 거실 바닥에 뿌려 놓고 물감을 풀어 온 가족이 뒹굴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다. 공간을 만들어 주고 아이가 무심히 그 안에 머물 수만 있다면 아이들은 자기 안에 있는 천재성을 마음껏 뿜어낼 수 있습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