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끝은 때로는 뭔가를 강요한다. 그 강도는 끝으로 갈수록 더 세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지 않고는 안 될 불가항력의 순간을 만들기도 한다.

끝을 얼마두지 않은 12월, 그것도 2010년대의 마지막 12월이 만든 절대 강요가 있다.

그것은 관계에 대한 생각이다. 관계!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말이 있을까? 사람들은 관계를 위해 태어났고, 또 평생 관계를 맺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살다가, 관계 속에서 죽는다.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안타까운 것은 관계에 대한 지식은 많지만, 그 지식을 삶의 지혜로 이끌어낼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보여주는 것이 뉴스다. 뉴스는 관계에 실패한 사람들의 백과사전이다.

2019년도의 뉴스를 책으로 엮는다면 그 규모는 역대 최고일 것이다. 정치, 경제, 교육 등 어느 하나 희망적인 것이 없다.

국가 혼란의 중심에는 정치인들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국민과의 관계를 저버리고 당리당락과 사리사욕에 빠졌다는 것이다. 말로만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그들에게 더 이상 속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국민을 농락하던 그들이 파렴치하게 또 표를 달라고 우리 곁으로 오고 있다. 이번엔 정말 제대로 뽑아야 한다.

그런데 정치인이야 다시 뽑으면 되지만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치 그 이상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이 교육계이다. 물론 그 이유도 관계 실패이다. 교육계의 관계 선(線)은 다른 어느 분야보다 복잡하다. 교사와 학생, 교사와 교사,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부모, 학부모와 학부모, (학)부모와 학생, 학교와 지역, 학교와 시대 등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관계 선으로 이루진 것이 교육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계에서는 그 선들이 다 엉켜버렸다. 어떤 선은 복구가 불가능하게 끊겨버렸다. 그 이유는 불신(不信)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교육계의 모습으로는 우리는 그 어떤 희망도 이야기할 수 없다. 희망은커녕 조만간 공도동망(共倒同亡)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수많은 연구자들이 희망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오히려 절망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정말 방법이 없을까?

그 방법을 필자는 관계에서 찾았다. 기초가 허술한 모래성은 곧 무너진다. 우리 교육계가 무너진 이유는 불신으로 교육 요소들 간의 관계 선이 끊어졌거나 엉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관계의 가장 기본인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서 필자는 어떤 부모인지를 생각해보았다.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2020년에는 덜 미안한 부모가 되기 위해, 또 교육 불신의 중심축이 된 끊겨버린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선이 다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 글을 등대처럼 밝힌다.

“부모에게는 세 가지 겸손이 필요합니다. 아이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겸손,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겸손,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겸손이지요. (중략) 부모가 겸손할 때 아이는 자신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서천석, 『하루 십 분, 내 아이를 생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