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요즘 마음이 아주 무겁다. 즐거운 일이 있어도 흔쾌하지 않다. 오랜 세월 가까이 지낸 후배교수가 항암투병 중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30일 ‘담도암’ 4기로 각종 장기를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은 그는 몸무게가 15㎏이나 줄었다고 한다. 그것도 부족해 5개월 예정의 기나긴 항암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요즘에는 10분 앉아있는 것도 힘들다고 한다. 그토록 활달하고 건강했던 50대 초반의 가장이 한순간에 고통의 나락에 떨어지다니?!

울림 좋고 당당한 그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7월 중순 일이다. 울산에 일이 있어서 전화했을 때, 그는 두 아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쾌활하고 명석하며 해맑은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쟁쟁하다. 조만간 한 번 보자며 전화를 끊고, 불과 2개월, 암수술을 받은 게다. 아니, 이런 경천동지할 일이 있나?! 멀쩡하던 사람이 느닷없이 암의 습격을 받고 병상에 누워있다니.

지금도 그의 투병생활이 실감나지 않는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가장이며, 대학교수이자 교양교육원장 직책을 수행하면서 연구와 교육에 전념하던 창창한 장년의 사내. 언제나 밝은 웃음과 투명한 성정으로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던 사람이 암에게 불의의 일격을 받아 쓰러진 것이다. 현대의학은 어디까지 인간의 생명을 보장할 수 있는지, 단단히 회의가 드는 것이다. 무의미한 생명연장에 반대하는 자발적인 연명의료 중단노력이 진척됨으로써 의술에 대한 믿음이 커지는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나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한편에서는 ‘길가메시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이른바 500세 인생에 도전하는 신기원이 싹트고 있다. 여타 두더지들보다 노화가 훨씬 느리고 4배나 오래 사는 장수 유전자를 가진 두더지에서 단서를 얻은 연구자들이 진행하고 있다는 ‘길가메시 프로젝트’는 극소수 부자들을 위한 것이겠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의료비는 하락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호모사피엔스의 평균수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후배교수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다. 언제 어디서 ‘암’을 비롯한 치명적인 질병의 급습으로 생명에 적신호가 켜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은 아직도 암과 싸우고 있지만, 총체적인 승리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면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그저 안부를 묻고, 삶을 향한 강렬한 의지를 일깨우고, 생명에 대한 의욕을 고취시키는 일 말고는 애당초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에 무력해지곤 한다. 그를 공격한 암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덮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거리를 배회하는 수많은 인총들이 암과 무관하다는 사실마저 새삼 경이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우며 원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 그래도 어찌 하겠는가?! 끝까지 싸워서 이겨내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 하늘로 날려 보낸다. 이 친구야, 훌훌 털고 일어나시게! 반드시 살아서 인간세상으로 귀환하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