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 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나라를 잃었던 시절에 소파 방정환은 ‘우리의 미래는 어린 아이들에게 있다’고 했다. 작고 어린 꼬맹이들을 부르는 이름이 따로 없다는 생각에 ‘어린이’라는 표현을 지어주었다. 그런 어른들이 모여서 어린이를 위한 여러 활동을 한 끝에, 우리 정부는 1957년에 ‘어린이헌장’을 제정했다. 7개 조로 만들어진 헌장은 ‘어린이는 위험에서 맨 먼저 구출돼야 한다’라고 분명히 적고 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는 얼토당토않게 어린아이들을 떠나보내고 슬픔에 잠긴 엄마아빠가 있다. 어린이보호구역임에도 과속 자동차에 치였다거나 언덕받이 비탈길에서 굴러내린 트럭에 변을 당한 아이들이 있다는 게 아닌가. 우리는 어린이를 위험에서 구출하고 있는가.

어린이를 안전하게 지키는 일보다 우리에게 급한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정치인들의 다툼 마당에 얽히게 된 부모들의 심정은 과연 어떨까. 어린이헌장이 전문에 적고 있는 대로, 우리는 ‘어린이들의 몸과 마음을 귀히 여겨 옳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힘쓰고’ 있는가. 사회복리와 민생문제를 정치논리의 거래수단으로 사용하는 일은 관련 당사자들의 마음을 힘들게 할 뿐 아니라 정치의 진행에도 그리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할 터이다. 아이가 당한 사고 앞에 누구라도 다른 핑계를 들이대면서 우선순위를 논한다면 당신은 참을 수 있을까. 눈물을 닦아줘도 모자랄 판에 엉뚱한 정치적 계산은 내려놓아야 한다. 어린이 안전을 위한 배려는 그야말로 ‘맨 먼저’ 해야 한다. 어른들 계산 탓에 아이들이 위험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며칠 안에, 유엔(UN)이 정한 인권의 날(Human Rights Day)을 맞는다. 올해는 특별히, ‘청소년’들이 각종 인권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하게 하고 인권침해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도록 캠페인을 벌인다고 한다. 어린이 인권에 대해서도 배려해, 어린이들을 위험과 폭력, 어려움과 문제들로부터 보호할 기준을 세운다고 한다. 각국의 정부들이 어린이들의 인권신장을 위하여 마음을 모은다고도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어린이들의 하루하루를 여러 위험으로부터 적절하게 보호하고 있는가.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마음껏 놀고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충분히 마련해 주고’ 있는가.

필자는 한때, 우리에게 ‘어린이날’이 따로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한 미국 친구의 한 마디에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어떻게 한국은 일 년에 단 하루를 정해 어린이날이라 하는가. 우리나라에서는 날마다 한국의 어린이날처럼 지내는데….’ 우리에게 어린이는 정말로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사람’인가. 어린이헌장은 ‘어린이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악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된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그들의 안전을 놓고 흥정하는 꼴을 보지 않았는가. 어린이가 안심하고 즐겁게 자라나는 나라가 돼야 한다. 나라를 찾기 위해서도, ‘어린이가 잘 자라야 한다’고 했던 그 어른들의 마음을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