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독일이 통일을 이룬지 내년이면 꼭 30년이다. 2차 대전 후 우리와 같은 분단국 독일이 1990년 통일되고 이제 EU의 중심국가로 우뚝 서 있다. 그들은 게르만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지속적인 국가 발전과 번영을 누리고 있다. 물론 독일과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지정학적으로 다른 면이 있다. 독일은 우리처럼 동족간의 전쟁도 겪지 않았다. 그러나 2차 대전 후 전범국가의 청산과정에서 분단국가로 낙착된 점은 우리와 같다. 엄격히 말하면 독일처럼 일본 본토가 분단되어야 하는데 식민지였던 한반도가 분단된 점은 아무래도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여하튼 우리는 독일 통일과정에서 통일의 교훈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서독의 일관성 있는 통일 정책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사민당 빌리 브란트가 시작한 동방정책은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어도 대동독 화해정책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사민당의 브란트가 설계하여 1967년 시작한 동방정책은 1990년 기민당의 콜에 의해 독일 통일로 이어졌다. 통일된 지 30년이 된 독일 총리는 현재 동독 출신 앙겔라 메르켈이 맡고 있다. 우리는 정권이 바뀌면 대북 정책까지 180도 바뀌고 있다. 우리도 통일 정책만큼은 여야가 합의하여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독일은 1972년 양독 기본합의서를 채택하는 조약에 서명하였다. 10개조의 합의서 내용은 서독이 동독을 정부로 인정하고 유엔에 동시에 가입한다는 것이 기본 골자이다. 물론 양독간 외교 관계인 대표부를 설치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양독은 이를 토대로 꾸준히 인적·물적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여 1990년 역사적인 통일을 이룩하였다. 우리는 그동안 남북 공동선언, 남북기본합의서, 6·15 선언, 10·4 공동 선언, 지난해 9·19 공동 선언이 선포되었지만 발표와 동시에 사문화되어 버렸다. 우리는 남북 합의문의 실질적 이행장치부터 마련해야 할 것이다.

양독 간에는 기본합의서와 여러 협정에 의해 상호 교류 협력이 증대되었다. 어느 통계를 보니 서독은 동독에 1년에 26억불을 지원하였다고 적혀 있다. 이는 우리의 10여 년의 대북지원액에 해당된다. 그러한데도 우리는 ‘퍼주기’ 논쟁을 일삼다 그마저 중단되었다. 독일의 슈미트 정부는 동독 도로 건설에 20억 마르크를 투자하였다. 심지어 콜 정부는 1983년 동독의 부채 10억 마르크의 차관보증까지 해 주었다. 그 대가로 양독 간에는 TV방송이 전면 개방되었다. 동서독의 언론인들은 교차 상주하면서 기사를 송출하였다.

서독인들은 동독을 자유롭게 방문하였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에는 약 500만 명이나 방문하였다. 심지어 서독인들은 최고 50만대의 차량으로 동독을 방문하였고, 그때 벌써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동독 전역에 파급되었다. 1987년 동독의 당서기 호네커도 서독을 방문하였다.

우리가 김정은의 남한 방문에 기대를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양독 간의 상호 교류가 독일 통일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상호 여행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남북의 숨구멍 역할을 하던 개성과 금강산마저 막혀버렸다.

독일 통일은 인적·물적 교류 협력이 결국 통일로 이어진다는 역사의 교훈을 우리에게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