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199건에 달하는 안건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신청하면서 정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허를 찔린 더불어민주당은 정치력 발휘의 여지를 찾지 못해 한국당 비난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올해 역시 예산안을 비롯한 쟁점 현안들을 벼락치기로 부실 처리할 개연성이 한껏 높아지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법안을 이대로 통과시키는 일은 막아야 한다. 작금의 사태는 공수처를 막아내야 할 당위성을 점점 더 높이고 있다. 

여야의 극한대결 구도 속에서 홍준표 전 대표는 “공수처를 주고 선거법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공수처법은 우리가 집권하면 폐지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 문제는 한국당 안에 홍 전 대표와 비슷한 견해를 보이는 기류가 있다는 사실이다. 정말 그래도 될까? 

홍 전 대표의 주장은 ‘집권하면’이라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 수준으로 자유한국당이 집권할 가망은 그리 높지 않다. 아니, 현직 대통령의 특수 사냥개 조직인 공수처가 설치된다면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진다. 지금 드러나고 있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경찰청을 동원한 청와대의 살벌한 정치공작 의혹들이 이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라있는 공수처법안은 ‘검찰 개혁’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돼 있다. 내용을 샅샅이 모르는 대중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것으로 인식된 검찰의 힘을 빼야 한다는 원칙에 공감하는 차원에서 무턱대고 찬성하는 여론이 높다. 악마는 디테일(detail)에 있다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는 민주당의 법안은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더욱이 공수처 검사의 절반 이상을 비(非)검사 출신으로 충원한다는 조항에 엄청난 마수(魔手)가 숨어 있다. 판사 3천 명, 검사 2천 명과 경찰 간부에 대한 기소권을 보장하는 ‘공수처’ 법안은 결코 허투루 다룰 일이 아니다. 국회 의석을 지켜 권력이나 더 연장해보자고 이런 무서운 법안 통과를 함부로 바꿔 먹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기막힌 참변이 우려되는 수상한 계절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