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겨울이 오고 있다. 벌써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린 곳도 있다. 살아있는 것들에게 겨울은 혹독한 계절이다. 그래서 모두들 겨울이 닥치기 전에 겨울나기 준비를 한다.

털이 있는 동물들은 방한용 털갈이를 하고, 땅속이나 굴속에서 동면을 하는 동물들도 있다. 곤충들은 대다수가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풀들도 보통은 씨앗이나 뿌리를 남기고 말라 죽지만, 살아서 겨울을 넘기는 풀도 상당수 있다. 나무들의 겨울나기가 그중 비장해 보인다. 앙상한 가지로 혹한을 견디는 나무들의 월동전략은 버리고 비우는 것이다. 나뭇잎을 다 떨고 몸 안의 수분까지 최소한으로 줄여서 빙점을 낮추는 것으로 동사(凍死)를 면한다. 잎을 달고 겨울을 나는 상록수들은 어쩌면 더 처절한 전략으로 월동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북한이 그러하듯 우리에게도 불과 몇 십 년 전까지 겨울은 혹독한 계절이었다. 최소한의 생존조건인 식량과 땔감의 마련도 어려운 사람이 많았다. 끼니때면 바가지를 들고 밥을 얻으러 다니는 거지도 동네마다 한둘은 있었다.

굶어 죽고 얼어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북녘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아린 것은 굶고 떨어본 사람들의 공통된 심정일 것이다. 남아돌아 처치 곤란한 옷가지라도 보내줄 수 있으면 오죽이나 좋은가. 세습 신격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인민들을 사지로 내모는 김정은 일당과 그에 동조하는 무리들에게 부디 천벌이 내리기를 바란다.

아직도 굶어 죽은 사람이 있다고는 하나 백방으로 노력을 하면 먹고 입는 것의 해결은 가능한 것이 대한민국이다.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노숙을 하는 사람들까지도 누군가 먹고 입을 것을 갖다 주는 나라가 되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살만하지 않은가. 빈부의 양극화니 상대적 박탈감이니 하는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그다지 절박한 사정이 아닐 수 있다. 그 때문에 절망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어리석고 나약한 정신이기 때문이다. 맨몸으로 겨울을 견디는 저 나무와 풀들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겨울이 되어도 굶어 죽고 얼어 죽을 걱정이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제는 겨울이 생존을 위협할 만큼 혹독한 계절이 아니라는 얘기다. 대비를 해야 할 것은 계절의 추위보다 개인이 겪는 마음의 추위인 것 같다. 중병에 걸리거나 사업이 망하거나 사고를 당하는 등의 이유로 극한상황에 몰리는 경우가 겨울에 해당한다. 무엇보다도 배고픈 게 가장 섧다고는 하지만 배가 고프다고 자살을 하지는 않는 것처럼 심리적인 이유가 더 절박할 수도 있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젊은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 자살자가 연간 1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 중의 8할은 우울증이 있는 경우라고 하니 마음의 병, 심리적인 원인이 죽음이라는 극단으로까지 내모는 것이다.

마음의 겨울에 대비하는 월동준비가 필요한 시절이다. 무성한 잎들을 다 떨어내고 최소한까지 수분을 내보내 빙점을 낮추는 나무들에게서 배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