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11월 말, 학생들이 분주하다. 몇몇 아이들은 필기도구를 들었고, 또 몇몇 아이들은 붉은 장갑을 꼈다. 간혹 장갑을 낀 아이들 사이에서 논쟁이 일기도 했다. 아이들은 논쟁의 정석(定石)을 보여주었다. 한 아이가 문제를 제기하면 다른 학생들은 그 소리에 귀 기울였다. 문제 제기가 끝나면 학생들은 숙고의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은 묵언의 시간과도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학생들은 먼저 눈으로 서로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대화 시작을 위한 동의를 구했다. 제일 먼저 동의를 구한 학생이 자신이 생각한 해결방법을 설명했다.

말하는 어조에서는 성숙함이 풍겼다.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치인들의 말하기와는 수준부터 달랐다. 공손한 자세로 상대의 입장에서 말하는 모습은 말하기의 정석이었다. 정석은 정석을 불렀다. 듣는 학생들도 말하는 학생의 생각을 공감하며 말하는 학생이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잘 듣는 것이 잘 말하는 것이라는 화법의 정석을 실천하였다. 훌륭한 논쟁은 협동과 협력을 통해 가장 효율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창출한다는 것을 학생들은 활동을 통해 스스로 체득했다.

학생들이 그토록 공을 들이는 작업은 바로 교실에 보리밭과 밀밭을 만드는 일! 학생들은 지난 주 목요일 아침 보리와 밀을 심을 미니 텃밭을 손수 만들었다. 학생들이 아름다운 논쟁을 펼친 작업 단계는 흙의 높이를 정하는 부분이었다. 학생들은 보리와 밀의 뿌리를 생각해서 각자의 학급에 맞게끔 밭을 만들었다.

학생들은 개성 있게 보리와 밀을 심었다. 과연 학생들은 무엇을 바라고 보리와 밀을 심었을까? 물론 학교 교육 프로그램으로 한 활동이지만 분명 학생들의 모습은 달랐다. 억지스러움 따위는 없었다. 오로지 학생들에게는 생명을 심는다는 경이로움만 있을 뿐이었다.

11월 말, 학교는 참으로 혼돈의 시기이다. 입시에 성공한 학생들과 실패한 학생들이 같은 공간에 공존하는 시간. 유종의 미에 대한 배움과 실천보단 입시를 끝낸 학생들은 학교에서 방치되는 시간. 1학년과 2학년은 학기말에 몰아치는 수행평가와 곧 있을 기말고사에 영혼이 탈탈 털리는 시간. 유의미한 것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학교의 11월 말이다.

잠시 시간을 내어 보리나 밀 등이 심겨진 학급 텃밭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보리가 심겨진 반에서 한흑구 선생의 수필 ‘보리’를 같이 읽어 보면 어떨까! 그래서 혹독한 겨울 같은 힘든 시기를 이겨내야 할 우리 학생들의 마음 밭에 인내와 희망의 보리를 심어주면 어떨까!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보리를 보며 가슴 뭉클해 하는 산자연중학교 학생들과 수필 ‘보리’를 읽는다.

“(…) 이제 모든 화초는 지심(地心) 속의 따스함을 찾아서 다 잠자고 있을 때, 너, 보리만은 억센 팔들을 내뻗치고, 해말간 얼굴로 생명의 보금자리를 깊이 뿌리박고 자라왔다. 날이 갈수록 해는 빛을 잃고 따스함을 잃었어도 너는 꿈쩍도 아니하고 그 푸른 얼굴을 잃지 않고 자라왔다. 칼날같이 매서운 바람이 너의 등을 밀고, 얼음같이 차디찬 눈이 너의 온몸을 덮어 억눌러도, 너는 너의 푸른 생명을 잃지 않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