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 다루기는 어려워
말(言) 다루기는 어려워
  • 등록일 2019.11.17 19:34
  • 게재일 2019.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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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해창 교사

진심이 담긴 말은 듣는 사람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 감동은 지속적으로 청자의 생각에 남아 자극을 주고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 말이 선하고 이타적일 때 울림은 더 크다. 듣는 사람도 그런 진심을 받아들일 상태라야 감동이 있다. 서로 타이밍이 맞아야한다. 주파수가 조금만 틀려도 잡음이 들리는 아날로그 라디오처럼 대화도 수많은 편견과 오해의 잡음 없이 서로 주파수를 맞춰야 가능한 일이다.

소크라테스가 아고라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건네는 대화는 어땠을지 궁금하다. 울림을 주었을까? 아마 그랬을 것 같다. 계속된 물음으로 주파수를 맞추고 결국에는 어떤 메시지를 깨닫게 하는 그의 대화법에서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청년들이 많았던 만큼 싫어하고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대화의 충격은 사람들에게 울림과 감동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었나보다. 그 충격의 경험으로 스스로 가치관을 깨면서 탐구하길 좋아했던 사람은 그를 좋아했을 것이고, 상처를 입은 사람은 소크라테스를 혐오하고 경멸했다.

교사는 말을 많이 할 수 밖에 없고 이로 인해 곤란을 겪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 나는 자주 내가 했던 말들을 곱씹어본다.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하거나 들었을 때 기분 나쁘지 않았을까 싶은 말을 했을 경우에는 특히 예민하게 그 장면을 떠올린다. 소심한 나의 성격도 한 몫 하지만 그렇게 곱씹으면서 그때 했으면 좋았을 말들을 상상해본다.

수업시간에 하는 말은 학습 내용이 말의 대부분이다. 특정한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생활지도나 면담을 목표로 학생과 일대일로 말하는 경우에는 자칫 실수가 나오기 쉽다. 학생들과 일대일로 말할 때는 최대한 표정과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다. 그럼에도 대화가 끝난 뒤에 내가 한 말과 행동을 후회하는 일이 많다. 말을 차분하고 조리 있게 잘하는 선생님들이 부러운 순간이다.

며칠 전 학생 한 명이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자율학습에서 빠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독서실이 더 공부가 잘된다는 이유를 댔다. 순간 짜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본인이 교실에서 장난을 많이 치는 녀석이 아니던가. 평소 무단지각을 많이 하던 녀석이라 좋지 않은 편견과 감정도 한몫했다.

교실에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설득했으나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그 모습도 고집스럽고 미워보였다. 결국 나는 그러면 안 되었는데, 소위 막말을 하고 말았다. 성실한 아이와 비교하고 평소 행동을 지적하며 지난 잘못을 들추어내 지금 하는 말이 얼마나 건방진 태도인지를 전했다. 감정을 실어 묵직하게 던졌다. 듣는 입장에서는 폭력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아이가 교무실을 떠나고 나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한 것은 아니지만 기분 나쁜 감정이 함께 섞여 나오는 말은 폭언 이상으로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후회했다. 말할 당시의 내 진심을 살펴보니 더 미안했다. 걱정되는 마음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말할 때의 내 진심이 그 학생을 위한 선한 마음뿐이었는가를 생각하니 그렇지 않았다. 미워하는 마음이 섞여있었다. 학생은 진심으로 고민하고 내게 말을 꺼냈을 텐데 나는 공부를 하지 않기 위한 핑계로 해석해버렸다. 주파수를 맞추지 못했다. 진심을 가장해 충격만 준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다음날 아침, 교실로 향하면서 녀석에서 어떻게 인사를 건넬지 고민했다. ‘머리를 쓰다듬을까? 장난치듯 말을 건넬까? 급식에서 나오는 부식을 챙겨주면서? 아마 시무룩하게 있겠지? 칭찬을 하는 게 나을까? 아 오늘은 일찍 왔으려나?’ 교실 문을 여니 그 녀석이 교실에 앉아 있었다. 오늘도 지각하리라 예상했는데 자리에 보여 약간 당황했다. 아직 선입견을 버리지 못했다. 놀란 나에게 그 녀석이 먼저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오늘 일찍 왔어요. 선생님 말 듣고 이제 일찍 오려구요. 저 어제도 새벽 1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했어요.”

말하기는 항상 어렵다. 다른 분야는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어나는 법이지만 말하기는 그 발전이 참 더디게 느껴진다. 외나무다리를 건너듯 항상 조심스럽게 ‘말’을 다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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