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중 포항공대 박사과정

포항공대는 봄에는 교내 축제로, 가을에는 카이스트와 교류전으로 연간 두 차례 축제를 연다. 가을 축제의 명칭은 ‘포스텍-카이스트 학생 대제전’이고 줄여서 포카전 혹은 카포전이라 부르며, 해마다 장소를 번갈아 개최한다. 올해 17회째인데 포항공대가 8승 9패로 근소하게 뒤처져 있다.

최종 승부는 여러 종목 승패를 합쳐 결정한다. 공대생들의 축제답게 과학 퀴즈나 프로그래밍 대결 같은 종목과 구기 종목인 야구와 축구, 농구도 있다.

학부 시절, 나는 야구 선수로 포카전에 출전한 경험이 있다. 학부생 시절인 2012년부터 2015년까지, 포항공대는 카이스트에 2014년 한 번 이기고 세 번을 졌다. 학부 졸업 후에 나는 야구에 관한 관심을 접고 살았다. 얼마 전 야구 동아리 선배와 밥을 먹으며 올해 포카전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최근 포항공대 야구팀 실력이 좋아졌다고 했다. 내가 야구를 하던 시절에는 팀이 매번 4부 리그에 머물렀지만, 최근에 2부리그까지 승격했고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단다. 카이스트 야구팀은 예전부터 2부리그에 참가하고 있다.

포항공대는 최근 2년 야구 경기에서 연달아 패했다. 초반에 앞서다가 후반에 역전을 당했다. 팀에서 분석하며 여러 이유를 찾아보았는데 카이스트에서 투수가 내는 사인을 훔쳤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있었다. 그래서 초반에 고전하다가 후반에 점수를 낸다는 가설이었다. 선배는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포수는 엉덩이 밑 쪽으로 손을 내려서 투수에게 사인을 줘서 던질 구질을 약속한다. 이 사인은 1루 주자가 쉽게 볼 수 있다. 타자는 1루 주자에게서 사인을 받아 투수가 직구와 변화구 중 어느 것을 던질지 미리 알 수 있다.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대 팀이 사인을 훔친다면, 우리도 사인을 훔쳐야 하는가? 이에 대해 단호하게 반박할 사람이 떠올랐다. 공자였다. 논어 ‘안연’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듣지 말며, 말하지 말고, 움직이지 말라.’ 반면, 그런 공자에게 반박할 마키아벨리도 떠올랐다. 군주론에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라며 승리를 위해 어떠한 방법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애초 상대 팀이 사인을 훔치지 않았으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지 상대 팀이 사인을 훔쳤기 때문에, 우리도 훔쳐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추어 야구 경기에서 사인 훔치기를 시도하면 평판이 나빠질 것이다. 즐기자고 하는 야구를 비신사적인 플레이까지 해가며 이기려 하는 것은 누구도 동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포카전 승리는 학교를 대표하는 동아리 1년의 가장 큰 목표며, 승리의 열매는 달콤하다. 특히 팀을 이끄는 주장은 승리가 더욱 간절하다. 주장으로서 한 해의 포카전을 이겼다는 자부심, 이긴 순간에 받는 헹가래, 근사한 트로피, 두고두고 자랑할 수 있는 추억이다. 게다가 이번 승리를 계기로 동아리 지원금이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면 승리를 위해 무엇이든 못할까 하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선배에게 굳이 포항공대도 카이스트의 사인을 훔쳤냐고 묻지는 않았다. 다만 상대가 사인을 훔치는 행위를 막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고는 들었다. 올해는 포항공대가 초반에 고전하다가 후반에 역전승을 했단다.

프로 야구에서도 사인을 훔치거나 이를 막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발전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다. 실력이 있다면 상대가 무엇을 던질지 안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포항공대 야구 실력이 최근 좋아졌고 분명 이 때문에 승리했을 것이다.

지금 보면, 포카전 경기의 승패가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승리한다고 보상이 생기지도 않고, 진다고 큰 손해가 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한 경기의 승리를 위해 두 팀 모두 땀을 흘렸던 순간들이 있다. 방학에 집에 가지 않고, 자발적으로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했던 시간들, 고된 훈련을 거쳐 뽑힌 학생들이 학교 대표로 경기에 나가는 것이다. 어쩌면 포카전에서 승리하고 싶은 마음은 노력에 대한 구체적인 결과물을 보고 싶은 욕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