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명 시인
조현명 시인

흔히 학교에서 진로상담은 전문상담과 같은 범주의 상담일 것이라고 오해를 받는다. 상담이란 단어 때문에 같은 것이 아닐까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먼저 상담의 대상부터 다르다. 전문상담은 불안과 우울 혹은 정서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내담자를 상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로상담은 아직도 진로를 정하지 못했거나 정했어도 성숙하지 못한 내담자를 상대로 하는 것이다. 게다가 출발점도 미묘하게 다르다. 전문상담은 내담자에게 말을 많이 하게 유도해서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밖으로 내어놓게 하는 게 출발점이다. 그것으로 자신을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진로상담은 역시 자기 이해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자기이해는 깨달음과 성숙이라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라 오랜 기다림과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내담자의 이야기를 아무리 들어준다 해도 그 시간동안 깨달음과 성숙이 일어나기 힘들므로 별 진전이 없는 상담이기 쉽다.

성숙하지 못한 학생에게 계속 진로상담을 하는 일은 전문상담보다 훨씬 뜬구름을 잡는 일이다. 그 학생이 직업을 가지는 때가 되어야 비로소 무언가 깨닫고 성숙에 이를 것이기 때문에 자욱한 먼지 같은 안개 속에서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일이다. 게다가 직업을 가지더라도 깨달음과 성숙에 이르지 못한 경우도 있을 텐데 결과를 후회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진로상담은 ‘내담자에게 언젠가 다가올 깨달음과 성숙을 기다리며 같이 고민 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즈음 학교에서 진로상담은 진학상담에 더 치중하고 있다. 그러니까 과정보다 결과에 초점을 맞춘 상담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학생의 깨달음과 성숙에 맞추어지는 순수한 진로상담은 찾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내담자가 그것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내담자의 부모나 주변 또한 그런 것은 상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설명회에 몰리는 학부모 학생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특별한 정보나 학습방법들이 진로상담의 주 내용이 되었으면 바라고 있다.

최근 대통령의 국회 연설로 시작해서 교육부가 대학입시에서 정시전형을 확대하고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확보하는 방안 등을 11월 중 발표하기로 예정하고 있다. 이렇게 대학입시가 바뀌게 되면 진로상담과 진학상담 부문은 다시 요동친다.

그러면 나는? 내 아이는? 이것이 학생과 학부모가 요구하는 진로 진학상담의 내용의 전부가 되어버린다. 내 자녀에게 어떤 깨달음이 있는지? 그건 어떻게 올 수 있는지? 깨달음이 찾아온 사례가 어떤 게 있는지? 진로성숙도는 어느 정도인지? 진로성숙도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러한 진로상담의 중요한 핵심의 필요성은 사라져버린다.

이런 현실에서 학생들의 깨달음과 성숙을 관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진로를 설계하게 한다는 학교 진로상담의 목표는 허상이다. 전문상담과의 오해와 잦은 입시정책변화,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교육풍토에서 학교 진로상담과 그것을 담당하는 진로전담교사 제도는 결국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