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백두산에서 백말을 타고 달리던 김정은이 이번에는 금강산을 찾았다. 그는 금강산의 국제 관광지구 재건을 위해 ‘너절한 남쪽 시설물’을 제거하라고 지시하였다.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절 필자는 여러 차례 금강산을 다녀온바 있다. 대형 유람선을 개조한 장전항의 해금강호텔에서 개최된 전국 국립대교수협의회를 주관하기도 하였다. 금강산 호텔에서는 남북 학자들 50여 명이 참가한 ‘남북(북남)관계의 발전과 학자들의 역할’을 주제로 한 학술토론회에도 참여한바 있다. 그곳의 이산가족 면회소, 평양 서커스 공연장, 간이식당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현대아산이 7천800억 원을 들여 지은 시설물인데 김정은은 이 시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다.

북미 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김정은의 이러한 돌출선언의 배경은 무엇일까. 김정은은 일찍부터 금강산 관광 특구개발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그는 원산의 갈마반도에 5성급 호텔을 여러 채 짓고, 마식령 스키장과 연계하여 금강산 관광 특구 사업을 야심차게 추진하였다. 그러나 유엔의 대북 제재는 대북 관광 자체를 봉쇄했다. 북한은 이에 동조하는 남한의 소극적인 자세에 불만이 많았다. 이것이 김정은이 남한의 건축물 철거를 위한 협상 통지문을 보내온 배경이다. 개성과 금강산에 막대한 재산을 투자한 남한 기업인들의 타들어 가는 심정은 어떠할까 짐작하고도 남는다.

김정은의 금강산 시설물 철거 관련 발언은 그의 개혁 개방의 의지를 드러낸 측면도 있다. 그의 이번 금강산 현지 지도에 국무위 설계국장 마원춘과 외무 담당 최선희 등이 수행하였다. 그는 4개월간 보이지 않던 리설주까지 대동하였다. 이는 김정은 시대의 관광 개발 특구 정책을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는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시설들을 북한식으로 새로 건설해야 한다”고도 하였다. 북한당국이 금강산 등 관광 특구를 본격화하기 위해서는 외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유엔의 대북 제재는 이를 기본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이번 철거 협상 제의는 외교적 협상이라는 ‘협박성 애걸’이 포함되어 있다.

김정은의 이번 발언에는 선대(先代)의 관광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한 점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선임자들의 대남 의존 정책’이 매우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지목한 선임자가 김정일을 말하는지 담당 책임자를 말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북한 세습 체제의 특성상 그들이 절대시하는 수령보다는 관광 책임자를 일컫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실은 김정일도 과거 중국 상해를 방문하여 그의 부친을 원망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애매모호한 발언이지만 후계자가 선대를 비판하는 듯한 발언은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3대 세습체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김정은의 이러한 발언은 북한 체제 변화를 위한 하나의 몸짓이라고도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금강산 관광시설의 철거를 위한 남북의 협상 과정을 지켜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