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벌린 글레니는 맨발의 연주자입니다. 세계 최고의 퍼커셔니스트입니다. 런던올림픽에서는 1천명의 타악기 연주자들을 총지휘하는 독주자로 활약했고 그래미상을 두 번 수상한 경력도 있습니다.

어릴 적 앓은 후유증으로 두 귀의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여인입니다. 귀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온몸으로 사람들의 목소리와 세상의 모든 음을 다 흡수하는 법을 터득하지요. 맨발로 무대에 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미상 수상 직후 희망을 묻는 기자들에게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합니다.

“듣는 것을 가르치는 센터를 세우고 싶습니다. 단지 듣는 법(how to listen)이 아니라 듣는 것 그 자체를 가르치는 곳이지요. 제대로 듣는 일은 절대로 대충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듣는다는 것은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입니다.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내가 지금 이 순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오직 당신뿐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컴퓨터나 휴대전화, 시계 따위에 관심을 뺏기지 않는 거지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당신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거지요. 경청이 어려운 이유는 귀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역설이죠. 당신의 말은 내가 잘 들리는 두 귀로 모두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의도로 듣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 주장을 들려주기 위해, 그 목적으로 듣기 일쑤입니다.

CNN 래리킹 쇼를 수십 년 진행하며 세계 최고의 달변가로 알려진 래리 킹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하고 있을 때 나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귀 기울여 들을 때 비로소 배운다.”

내 청력이 완전히 소실되었다는 상상으로 상대방 입술 모양과 눈빛에 온전히 집중하며 듣는 연습을 해보고 싶습니다. 평소 들으려 노력하지 않은 심장 소리, 발걸음 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순간을 만나보면 어떨까요?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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