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북한 당국은 최고 지도자를 항상 우상화하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혁명 역사’와 ‘혁명 활동’까지 초중등의 핵심교과로 삼고 있다. 김일성 부자의 신출귀몰한 ‘혁명적 행위’는 우상화를 넘어 신격화 수준에 이르고 있다. 김일성의 전기인 ‘세기와 더불어’도 그의 항일 투쟁과 빨치산 활동을 과장 선전하고 있다. 북한은 우상화를 통해 수령의 왕국 건설을 위해 일사불란한 체제의 안정을 도모하고 있다.

이러한 수령 우상화 현상은 김정은 시대에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2011년 김정일 사후 1984년 생 28세 김정은은 세습왕조의 통치를 위임받았다. 북한 당국은 그의 일천한 경륜 보강을 위해 상징조작을 시작하였다. 그의 헤어스타일과 제스처, 검은 뿔테 안경, 흡연 장면, 복장까지 할아버지 김일성을 모방하고 있다. 김정일이 회피하던 대중연설도 그는 할아버지처럼 수시로 연출한다. 30대의 통치자 김정은을 노령의 간부들이 호위하고, 그의 현장지시는 모두 빠짐없이 받아 적는다.‘적자생존’의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고모부 장성택처럼 조금이라도 불경한 태도를 보이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받는다. 모두가 우상화 강화 현상이다.

김정은 시대의 이러한 우상화에도 불구하고 북한 땅에서는 시장은 날로 확산되고 있다. 농촌의 소규모 장마당에서 출발한 종합 시장은 벌써 500여 개가 넘었다. 시장화에 따라 북한의 ‘돈 주’는 자본가 행세를 하고 빈부의 격차는 심화되고 있다. 북한의 시장화는 정보화가 촉진되어 휴대폰 소유자가 600만 명을 넘었다. 시장화의 급속한 진전은 기아자의 감소 등 긍정적인 측면도 나타난다. 그렇다보니 북한 당국은 이제 시장화의 물결을 막을 수 없다. 북한 시장에서 돈을 벌려는 사람은 증가하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신흥 부자가 되려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사회의 시장화 진전은 우상화의 역행 현상을 초래한다. 그러나 북한의 시장 정책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지만 이제 시장화의 큰 물꼬를 막을 수는 없다. 벌써‘우리를 배고프게 하는 수령은 우리의 수령이 아니다’는 말까지 번지고 있다. 김정은이 작년부터 선군(先軍)보다는 선경(先經)을 앞세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장은 중단된 북한의 공업을 다소나마 회생시키고 물류와 운수업이 동반 성장하게 된다. 동시에 시장을 통한 정보화의 진전은 주민들의 의식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시장화가 촉진될수록 북한의 우상화 정책은 지장을 받는다. 북한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보다는 ‘눈앞의 빵’을 더욱 선호하기 때문이다.

시장경제는 결국 주민들이 이념보다는 실용적 가치를 선호케 한다. 그러다 보니 북한 땅의 시장화는 우상화정책에 역행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북한 당국은 시장화의 부작용을 줄이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시장화에 따른 다양한 사회적 욕구마저 당이나 국가가 통제할 수는 없다. 시장화가 촉진될수록 독점 권력은 분산되고 다원화된다. 앞으로 북한 인민들의 정치적 욕구도 다원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장 경제의 초보 단계인 북한에서 주민들이 반정부 반체제 의식은 조직화되지 못하고 있다. 오렌지 혁명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