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장규열 한동대 교수·언론정보문화학부

몸살은 언제 끝이 나려는지. 장관직 한 자리를 놓고 씨름한 지가 두 달이 되어간다. 처음에 조금씩 물러섰으면 싶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절체절명의 승부처가 되어 버린다. 어느 쪽도 돌아갈 길은 생각도 하지 않는 사이에 나라와 백성은 절반으로 갈라져 버렸다. 이 일도 지나는 가려는지, 소동 끝에 무엇을 거둘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여와 야가 갈등을 겪고 국민이 편갈린 모양은 그리 낯설지 않아도, 싸움을 거듭하는 동안 다툼이 품은 내용은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달라져 간다. 우리에게는 이념 갈등의 흔적이 제법 남아있어 ‘빨갱이’와 ‘꼴통보수’를 사용하지만, 낱말에 실리는 느낌과 생각이 꾸준히 바뀌어 간다. 보수와 진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도 변화해 간다.

프린스턴대 제이콥 샤피로(Jacob Shapiro) 교수는 ‘이념이 죽었다(Ideology is dead.)’고 선언한다. 지난 세기를 휩쓸었던 방식의 이념 구분은 힘을 잃었다고 설명한다. 즉,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스러져간 ‘공산주의’와 미국이 대표하던 ‘자유진영’ 간의 대결 구도는 의미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세계는 이제 새로운 이념 구도를 향하여 나아가야 하지만, 아직 뚜렷한 이념의 정체성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진단한다. 한반도에 20세기식 이념의 구분이 남아있기는 해도,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도 바뀌어 간다. 오늘 당장 겪는 갈등의 모습에도 오른쪽과 왼쪽이 이전처럼 선명하지 않다. 좌우가 아니라 ‘계급’ 간의 다툼으로 바라보는가 하면, 각 진영 내에서 다양한 생각들이 표출되기도 한다. 지난날엔 칼날처럼 선명했을 대결의 전선이 날이 갈수록 무디어 보이지 않는가. 우리는 누구와 싸우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살필 것인가. 이 모든 진통이 진정 ‘민주주의’를 위한 일이라면, 결국 ‘국민의 눈빛’을 헤아려야 한다.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기 위하여 바라볼 곳은 역시 국민이 아닌가. 깃발과 선동에 흔들리는 우중(愚衆)이 아니라 잘 새겨 판단한 끝에 움직이는 시민(市民)의 발길을 바라보아야 한다. 완벽한 사람도 없고 끝판왕 제도도 없다. 끊임없이 자각과 반성을 거듭하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몸부림이 있을 뿐이 아닌가. 허수아비 이념에 휘둘리기보다 시민의 하루하루가 편안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모인 사람의 숫자에 겁먹기보다 그들이 가진 진정성의 무게를 달아보아야 한다. 그 억울함은 당신 자신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누군가 남이 넣어준 생각이었는지. 주장이 정당하려면, 시민으로서 당당한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어야 한다.

방점은 ‘개혁’에 있다. 생각을 모아야 한다. 온 세상이 다른 판에서 씨름 중인데, 우리만 케케묵은 방식에 머물 수는 없다. 모색 중이라는 새 이념의 정체성을 우리가 신박하게 발견할 수는 없을까. 20세기엔 우리가 따라잡기에도 버거웠지만, 21세기에 우리는 거의 맨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진영으로 갈라서 죽고 사는 게 아니라 모두 함께 잘 살아내는 길을 찾아야 한다. 묵은 이념에 머물기보다 새로운 생각으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