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 대학 프레드 러스킨은 ‘용서학’을 연구합니다. 그는 용서는 화해와 다르다는 색다른 주장을 펼칩니다. “용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 상대와 무관하게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치유의 행위가 용서입니다.”

공항 활주로 예를 듭니다. “착륙 유도 장치가 고장 난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공항을 향해 날아오던 비행기들은 주변 상공을 선회하죠. 착륙 유도 장치의 수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일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의 상태에 들어갑니다. 연료가 떨어지기 전에 착륙을 해야 하는 기장과 승무원들, 이미 착륙해 집에 돌아갔어야 할 시간에 공항을 아래 두고 선뜻 착륙을 못해 선회하는 짜증 난 승객들. 오랜만의 만남으로 흥분에 들떠 공항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마중 나온 이들의 초조함.”

프레드 러시킨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상태’를 고장 난 활주로에 비유하죠. 모두에게 힘든 상태라는 것입니다. 용서를 영어로는 Forgive라고 하지요. 상대가 아닌 나를 위하여(For) 주는(give) 가장 멋진 선물입니다. 찾아가서 화해하고 손잡고 포옹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다음 단계의 행위로 꼭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용서는 내 마음 안에서 빙글빙글 돌며 선회 비행을 계속하는 지긋지긋한 그 존재들을 착륙시켜 내 마음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길을 터 주는 일입니다.

프레드 러스킨은 덧붙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누구나 예외 없이 그 한 사람을 쉽게 용서하지 못합니다. 나 자신입니다.” 나를 평생 관찰했고, 내가 수치스러운 행동을 적나라하게 목격한 바로 그 눈길, 그 존재.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 삼각지 허름한 국숫집 할머니의 용서처럼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을 스스로에게 주는 일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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