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매일같이 조국 교수 얘기가 방송 화제다. 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되는 일도 따로 없을 것 같다.

사실 나는 요즘 정치라는 것에서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 한다. 뉴스도 자세히 보려 하지 않아서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

어제는 옆 방 계신 선생님이 무슨 시국 성명을 같이 하자고 하시는데, 깊이 생각해 보겠노라 답하고 나왔지만 이런 성명까지 하다가는 내 이름이 얼마나 닳아 버릴지 알 수 없어 그럴 생각도 없다.

며칠 전 청문회라는 것을 할 때가 생각난다. 그날 텔레비전 방송이래야 우연히 보게 된 것뿐이다. 하루 종일 기자 간담회를 하고 청문회를 하니 지나가다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는 것이다.

청문회 풍경이라는 게 새삼스러웠다. 사회를 보는 사람은 판사 출신, 질의를 하는 야당 의원들 가운데에는 검사 출신, 또 그 당의 대표라는 사람은 공안검사 출신이었고, ‘심문’을 받는 당사자는 왕년의 ‘사노맹’ 활동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언도 받은 사람이었다. 지나가는 얘기지만 이 사노맹은 내가 알기로 6·25 한국전쟁 이후에 이 땅에서 펼쳐진 비합법적 사회주의 운동 그룹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지속적인 조직이었다. 물론 나도 모르게 생겨났다 사라진 그룹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때는 사회주의 운동이라 해도 그 실체가 당사자들 스스로에 의해서도 실체적으로 인식되지 못한 면이 컸다. 그러니 그 실체적 현실이 소련이나 중국이나 북한의 그것이라 생각되지 못한 면도 있고, 군사독재 체제나 그 직접적인 후계체제에 대한 저항이나 민주화운동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면이 있었다. 그것이 1980년대에 ‘대중화’ 된 ‘사회주의적 민주화운동’을 정당화 할 수 있는 한 요소일 수도 있었다.

물론 나는 이 문제를 그렇게 느슨하게 사고하고 있지는 않다. 지적 무능력이나 게으름 같은 것이 세계사의 추이에 둔감하게 했다면 그 책임을 변명해 줄 어떤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변명에 발빠르지 말아야 한다.

세월이 흘러 안기부나 공안검찰이나 정보 경찰에 쫓기던 사람이 전혀 다른 사유로 ‘심문’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것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자본의 탐욕을 비판하던 사람이 바로 그 죄명으로 왕년의 판검사들 앞에 선 것이라고나 할까.

나는 매일 계속되는 ‘조국’ 사태에 가급적 눈 돌리지 않을 것이다. 페이스북에서는 문학인들이 조국을 지키느라 난리가 난 모양이다. 문학은 과연 무엇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들이라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