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열병 갈수록 확산 왜?
북한유입설 증명 근거 못 찾아
감염경로·역학관계 파악 실패
소독약품 인증 안돼 효과 의문
확진판정·이동제한 조치 등도
오락가락 대응에 혼란 더 심화
현재 6곳 확진 5만마리 살처분
한반도 돼지 절멸 경고도 나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악명을 한껏 떨치고 있다. 25일에도 수도권에서 의심 신고가 이어져 자칫 전국으로 확산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역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이 ‘조국 정국’에 매몰돼 있는 사이에 ASF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청와대가 부랴부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지만, 감염경로 등 핵심 의문점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날은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과 인천 강화군 양도면, 불은면의 양돈 농가 등 수도권에서만 ASF 의심 사례가 3건이나 발생했다. 이 중 불온면 농가는 양성으로 확진됐다. 신고건수와 템포가 빨라지는 양상이다. 지난 17일 경기 파주시에서 처음 확진된 ASF는 25일 오후 9시 현재까지 모두 6곳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 현재까지 살처분한 돼지만도 모두 5만2천여 마리에 이를 정도로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경기도 전체 돼지 사육량의 2.3%에 해당한다.

ASF 확산 불안감은 대구·경북지역 농민들을 옥죄고 있다. 안동시 와룡면의 한 양돈농장주는 “혹시나 ASF가 남쪽으로 내려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에 밤잠을 못자고 있다”며 “정부가 무엇하나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소독만 하라고 해 답답하기만 하다”고 호소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ASF 확산을 빨리 막지 못하면 한반도에서 돼지가 절멸상태에 들어갈지 모른다며 사안의 중차대함을 경고했다. 문 교수는 “국정원의 조사에 따르면 5월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터진 북한 평안북도의 경우 4개월 만에 다 죽었다는 첩보가 돈다”며 “북한은 몇 달 내에 돼지가 거의 멸종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ASF의 북한발 유입설에 세간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데도 정부는 감염경로를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남북공동 방역 설득 등에도 실질적인 진전을 보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장 시급히 밝혀져야 할 것은 감염 및 확산경로다. 어디에서 병원균이 출발했는지를 알아야 정확한 대책과 예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ASF 발병 원인은 감염된 잔반을 먹이로 먹이거나, 농장 관계자가 발병국을 다녀왔거나 야생 멧돼지가 바이러스를 옮기는 경우가 지목돼 왔다. 최초로 발생한 파주와 연천의 두 농가는 이와 무관한 것으로 파악됐다. 잔반도 먹이지 않았고, 농장주나 근로자가 발병국에 갔다 온 적도 없다. 축사는 울타리와 창문으로 막혀 야생 멧돼지가 접근할 수 없게 돼 있다. 북한유입설이 설득력을 갖는 대목이다. 기껏 파악한 차량역학 조사도 뒷북조사나 다름 아니다. 의심신고가 들어온 지역을 통해 역추적해 내놓은 결과다.

방역효과를 두고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ASF 방역 및 차단을 위해 전국 양돈농가에선 자체 소독을 하고 있다. 이들이 쓰는 소독 약품은 원액과 물을 일정 비율로 섞어 묽게 해 사용한다. 하지만 희석 비율이 잘못되면 소독 효과가 없거나 떨어질 우려가 있다. 지난달 ASF 방제 권장 약품으로 178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희석 비율이 검증된 정부 허가 제품은 3종뿐인 것으로 드러났다. 나머지 175개 제품은 희석비율이 검증되지 않아 효과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 논란의 요지다. 제품마다 희석 비율이 16배에서 1천280배로 적혀 있지만, 이는 제약회사들이 정한 것들이다. 결국, 정부가 권장 약품으로 발표만 했을 뿐 효과 인증은 하지 않은 것이다. 더욱이 돼지 분변 양에 따라 소독약을 뿌리는 시기에 따라 효과도 달라지는 데 이 역시 검증은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치단체마다 효과 인증 여부와 상관없이 178개 제품 가운데 알아서 사용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네덜란드 등 해외 검역기관에서 추가로 인정받은 제품은 8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확진 판정을 둘러싼 검사도 문제가 되고 있다. 기존 구제역과 돼지콜레라의 경우 간이진단키트를 통한 검사가 가능했지만, ASF의 경우 간이진단키트가 개발되지 않아 혈청을 직접 연구실로 가져가 검사를 하는 데 약 6시간 정도 걸린다. 앞서 의심신고를 받고 농장을 검사할 때 의심스러운 개체 두 마리 정도를 선정해 검사한다. 하지만 ASF 발생 이후 혈청 추출 대상을 늘려서 검사하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이동제한을 두고도 혼란을 부추긴다는 뒷말이 나온다. 당국의 대응이 안일하다는 것. 정부가 지난 19일 ASF 첫 발생 48시간 만에 전국 ‘일시이동중지명령’(스탠드스틸·Standstill)을 해제하고 돼지고기 경매를 재개한 것도 성급했다는 비판이다.

ASF 잠복기가 최대 19일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돼지고기 수급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 기간을 연장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정부는 전날 5번째 확진 판정 이후인 24일 낮 12시부터 48시간 동안 전국에 ‘일시이동중지명령’을 다시 발령한 상태다.

농장과 도축장, 사료 공장, 출입 차량 등 모든 것이 전면 중단되는 조치다. 아울러 경기 북부 6개 시·군에 한정했던 ASF중점관리지역을 경기도와 인천, 강원도 등 3개 광역자치단체 전체로 확대했다. 분뇨처리 등 문제와 전국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는 대국적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하지 못한 졸속 농정이 계속되면서 ASF확산 차단 여부도 잠복돼 있는 셈이다.

/손병현기자 why@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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