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산업혁명과 안젤루이스의 종
제1차 산업혁명과 안젤루이스의 종
  • 등록일 2019.09.17 20:04
  • 게재일 2019.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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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의 ‘안젤루이스의 종’.

제1차 산업혁명, 이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채 일곱 글자 밖에 되지 않는 이 단어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먼저 ‘제1차’란 산업혁명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혁명’이란 기존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쓸어 가버리는 쓰나미와도 같은 거대한 변혁이다. 산업 혁명이라는 용어는 프랑스의 학자들이 가장 먼저 사용했다고 하지만 일반화된 것은 영국의 경제사가인 아널드 토인비가 영국경제발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였다고 한다. 이후 이 용어는 보다 광범위하게 적용되어왔다. 이러한 산업혁명은 ‘농경’ 중심의 사회를 ‘산업’ 중심의 사회로 바꾸어 놓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는 삶의 중심에는 농업이 있었다. 땅에 작물을 심고 그것을 가꾸어 수확하는 삶, 이것이 모든 인류의 공통된 삶의 방식이었다. 농업 중심의 사회에 산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 즉 삶의 방식 역시 여기에 맞춘다는 것이다. 문학, 예술, 음악 등은 농업과 그러한 농업을 가능케 하는 자연을 중심소재로 삼았다. 릴케의 ‘가을’, 드뷔시의 ‘목신에의 오후’와 같은 시와 음악들이 그것이다.

또한 이것은 우리의 사고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침에 해가 뜨면 들에 나가서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므로 집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자연환경에 인간의 삶을 맞춘다. 변화하는 자연에 맞춰 옷을 입고, 제철 음식을 먹으며 자연의 순환을 인식하게 된다. 나아가 자연을 순환시키는 정체 모를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인간의 삶 역시 그러한 순환적임을 인식하게 된다. 자연의 순환이 이미 정해진 것처럼 거부할 수 없는 숙명과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감자를 심으면 감자가 자라고, 보리를 심으면 보리가 자라는 것을 보게 된다. 콩 심은 데 팥이 나는 일은 없고 불을 때지 않은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일은 없다. 콩을 심으면 그에 비례해서 콩이 나는 것이지 이의없을 만큼 적거나 터무니없이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없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것, 원인에는 그에 합당한 결과가 따른다는 인과론적 세계관이 자리잡게 된다. 운명론, 인과론은 농경중심사회에서 경험하고 배운 것들에서 기반한 지식이며, 이것이 당대의 종교와 윤리로 자리 잡았다.

산업혁명과 함께 농업이 이룩한 삶의 방식 역시 사라진다. 사람들은 들에 나가서 일을 하지 않고 공장에서 일을 한다. 낮에도 일을 하지만 밤에도 일을 하기도 한다. 밤에도 일을 하려면 어둠을 극복해야 했다. 전기와 전구는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출현한다.

자신이 일하는 논과 밭을 중심으로 농촌에 드문드문 집을 짓고 살았던 사람들은 공장 근처로 몰려 거대한 규모의 집성지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집성지에 새로운 공장이 들어선다. 왜냐하면 인력을 구하기 쉽기 때문이다. 다시 여기로 사람이 모이고, 또 그런 사람을 따라 공장이 지어진다. 공장들이 대규모로 들어서고 인간의 규모도 커져 거대한 도시를 이루게 된다.

조용하고 따분한 농촌과 달리 도시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시끌벅적하고 야단스러운 일들이 매일 같이 일어난다. 인간보다 자연을 중심으로 삼았던 예술은 이제 도시와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집중하게 된다. 도시의 사람들은 공장에서 스스로 물건을 만들어 낸다. 운명보다는 개인의 역량을 중시하게 된다. 개인은 노력에 비례하여 결과를 얻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우연히 성공을 이룩하기도 한다. 우연히 사람을 만나 우연한 일을 경험하게 된다. 이제 사람들은 필연보다는 우연을 더 믿게 된다.

산업은 농업의 자리를 차지하고 군림하며 인간을 산업에 맞게 개조한다. 인간은 더 이상 운명과 필연에 매달리지 않는다. 인간은 자연의 섭리에 저항하며 스스로의 운명은 스스로 헤쳐 나가고자 한다. 프론티어 정신! 산업사회는 이것을 종교처럼 섬기고 윤리규범처럼 따르고자 한다. 산업혁명은 대륙의 한 구석에서 시작하여 이제 전 세계로 들불처럼 번져나간다.

‘만종’으로 널리 알려진 밀레의 ‘안젤루이스의 종’이라는 그림이 있다. 넓은 들판, 어둠이 서서히 다가오는 시간, 멀리 교회에서 종이 울려 퍼지면 일을 마친 농부 부부가 기도를 드린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들 가운데 놓인 감자바구니를 통해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하는 것이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을 엑스레이로 촬영해 본 결과 밀레가 처음부터 감자바구니를 그린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저들 사이에는 감자가 담긴 바구니가 아니라 강보에 싸인 아기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농부 부부는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를 묻기 위해 들판으로 나왔던 것이다. 아기를 묻기 전 그들은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그들이 경건하고 한편으로는 슬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 그림이 그려진 것은 사실 1857년 즈음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물이 파문을 일으키듯 유럽대륙으로 번져나갔다. 이 그림과 산업혁명의 전파시점이 유사한다는 것은 공교롭게 느껴진다. ‘안젤루이스 종’에서 보인 농부와 그의 아내의 애도는 이제 저물어가는 농경 사회에 대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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