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줄어들고 있어요. 그러니 추석에는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어요. 그러니 추석에는
  • 등록일 2019.09.10 18:27
  • 게재일 2019.09.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만경황운은 넓은 들판의 누렇게 익어가는 곡식을 뜻한다. 그리하여 추석은 넉넉하라.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 제발 당신의 조카에게 사촌에게 취직은 했니 따위의 말은 묻지 말기 바란다. 꽤 오래된 일이지만 하이네켄은 인턴 채용과정을 동영상으로 담아 배포한 일이 있었다. 인턴지원자 1천734명 중 적합한 인재를 찾기 위해 ‘킥오프’, ‘응급처치’, ‘출구’ 라는 세 가지 면접방식을 소개했다. 먼저 지원자는 면접자의 손을 잡고 면접장소로 이동한다.

인터뷰 도중 면접관이 쓰러지는 응급상황이 발생하고, 비상벨이 울려 건물 밖으로 탈출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 과정을 거친 후 최종 후보자 세 명을 선발한다. 하이네켄 직원이 투표를 통해 세 명 중 한 명을 뽑는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면접자는 유벤투스 경기장에서 마지막 미션을 행하게 된다.

마지막 미션은 커다란 전광판을 통해 채용 사실을 통보받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으로부터 축하를 받는 일이다. 하이네켄은 이러한 면접방식을 통해 전형적인 채용과정에서 파악하기 힘들었던 지원자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했고, 창의적인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널리 알리는 광고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

여기서 꼭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여기에 지원자가 1천734명이라는 것이며, 더욱 정유한 것은 이 많은 사람 중 겨우 한 명을 뽑았다는 것이다. 1천734:1의 경쟁률을 뚫고 뽑힌 가이 루히팅이란 지원자는 좋겠지만 나머지 1천733명은 어떻게 해야 하나? 채용된 사람은 유벤투스 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람에게 환호와 갈채를 받았겠지만, 나머지 1천733명은 어디서 어떻게 위로받아야 하는 것일까? 어쩌다 취업이 이렇게 어려워진 것일까? 취업을 했을 뿐인데 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람은 왜 모두 자기 일처럼 그렇게 열렬히 환호하는 것일까?

‘미생’이란 웹툰은 대중의 인기에 힘입어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이 드라마는 ‘미생’ 신드롬을 불러 일으킬 정도였다. 여기에는 한국 기원의 연구생이었으나 프로입단에 실패한 장그래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장그래는 프로기사의 꿈을 접고 대기업의 계약직 직원에서 정직원으로 채용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 웹툰에서 흥미로운 장면은 장그래가 꺼내놓은 일기장이다. 장그래는 한국기원 연구생 시절 두었던 대국을 기보로 남겨 왔다. 이러한 습관은 회사 생활에서도 이어져 그날 있었던 일을 되새기며 매일매일 일기를 쓴다. 문제는 그렇게 열정적이며, 성실하게 일했고, 높은 실적을 올리기도 했지만 그는 채용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와 물어야 한다. 어쩌다 청년취업이 이렇게 어려워진 것일까?

활판인쇄를 하던 시절, 식자공이라는 직업이 있었다. 원고대로 활자를 활자판에 배열하는 일을 했다. 인쇄술이 발전하자 식자공은 사라졌다. 통신기술이 발전하자 전화교환수라는 직업이 사라졌다. 증기선이 나오게 되자 뱃사공이 사라졌으며, 자동차가 보급되자 인력거꾼이 사라졌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무수한 직업이 있었지만, 기술의 발전과 함께 많은 직업이 사라졌다. 스탠퍼드대의 토니 세바(Tony Seba)는 2030년에는 현재 있는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으며 미국의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Tomas Frey)는 20억여 명에 달하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한다.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는 5년 후에는 현재의 일자리가 710만여 개가 사라지고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 200만여 개 만들어져 결국 500만여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 답은 분명해진다. 취업이 어려워진 것은 기술산업의 발전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폴란드 출신의 영국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1970년대를 기준으로 근대적 자본주의(1970년 이전의 자본주의)와 탈근대적 자본주의(1970년 이후의 자본주의)를 구분한다. 그는 근대적 자본주의를 지배하고 있는 중요한 가치가 생산과 노동이었다면, 탈근대적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가치는 소비와 자유라고 말한다. 생산과 노동이 중시되었던 시대는 일자리가 남아돌았다. 그런 이유로 언제든 노동시장에 투입될 수 있는 예비 노동 인력을 확보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국가는 실업자를 부양했다. 하지만 소비를 통해 자유를 만끽하는 1970년대 이후 실업자는 골칫거리이자 ‘잉여’ 인구가 되었다. 생산자사회에선 누구건 일해야 하지만 소비자사회에선 누구건 소비해야 한다. 과거에는 일하지 않는 자가 문제였다면, 오늘날은 소비하지 않는 자가 문제다.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공강일 서울대 강사·국문학

일하지 않는 자를 일하게 하고, 소비하지 않는 자를 소비하게 만들면 사회적 문제는 많이 해결된다. 그런데 어떻게 소비하게 만들 것인가? 직업은 한정되어 있고, 한정되어 있는 것마저 줄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바우만이 내놓은 대책은 노동과 노동시장을 분리하고, 소득 자격과 소득 능력을 분리하라는 것이다. 어렵게 들릴지 모르나 기업은 노동자를 채용하려고 애쓰고, 노동자는 실업자와 노동시간을 나누고, 정부는 실직자가 살아갈 수 있도록 기본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면 된다. 정부는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실직자가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다시 경제활동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었기에 제2, 제3의 인생을 설계할 필요가 있는 고령인구에 관한 정책도 같은 맥락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이런 상황이니 올해만은 제발 취직을 못한 취준생을 괴롭히지 말 것!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