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온 나라가 한 뉴스로 몸살을 앓는다. 각료 한 사람 임명을 놓고 이렇게 시끄럽기도 처음이지만, 그 탓에 꾸준히 오명을 뒤집어쓰는 집단이 하나 있다.

대학. 대학은 어쩌다 이 일에 이렇게 깊이 끼어들게 되었는지. 세상을 둘러보아 우리만큼 대학과 대학입시에 초미의 관심을 쏟는 나라가 흔하지 않다. 우리에겐 어쩌다 대학이 모두의 역린이 되어 버렸을까. 그러나 들여다보면, 대학이 무엇을 하는지 대학생은 무엇을 배우는지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대학의 문을 어떻게 뚫고 들어갈 것인지에만 모두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대학에는 무관심하고 대학입시에만 온 신경을 기울인다. 입시만 통과하면 모든 게 끝이 나는가. 이게 정상일까.

대학은 왜 정치에 소환되는가. 어째서 대학은 온갖 비리와 거짓말에 물이 든 것처럼 보이는가. 빛의 속도로 변화해 가는 세상에 역설적으로 가장 천천히 적응해 가는 대학에 우선 책임이 크다. 융합과 소통을 통한 변화를 외치기만 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대학의 비역동성(非力動性)을 돌아보아야 한다. 스스로 일어서 움직여 가기보다 정부의 지원에 기대는 대학의 의존성(依存性)을 반성하여야 한다. 대학이 창의로운 역동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고 자기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생존력을 만들지 못하면 누누이 누구에겐가 기댈 수 밖에 없다. 대학이 변화를 예측하여 주도하지 못하면 이미 생명이 없고, 스스로 대학의 자리를 만들지 못하면 자신있게 가르칠 수 없다. 역동성을 잃어버린 대학은 정치에 휘둘릴 것이며 자생력을 상실한 대학은 권력의 하수(下手)일 수 밖에 없다.

공정한 입시제도를 만들기 위하여 정부가 고심해 온 흔적에는 박수를 보낸다. 그렇다 하여, 대학을 모두 같은 모양으로만 몰아온 궤적에는 찬성하기 어렵다. 다중(多衆)을 대상으로 한 정치의 논리가 대학에도 수정없이 적용되는 일은 대학의 발전에 덕이 되었을까 해가 되었을까. 인구절벽을 눈앞에 두고도 여전히 치열한 대입경쟁은 무슨 조화인가. 대학의 서열화를 없애기 위하여 대학은 무엇을 했는가. 대학간판이면 만사형통이 되는 인식은 어떻게 바꿀 것인가. 글로벌대학환경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대학입시가 문제인가 대학교육이 문제인가. 생각거리가 한가득인데, 우리 대학은 무엇을 하는가. 사회비평가 로저 킴벌(Roger Kimball)은 ‘정치가 대학의 본질과 소명을 심대하게 오염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지 않는가.

초중등교육에 아무리 좋은 정책을 펼쳐도, 대학과 대학입시가 그대로이면 아무 소용이 없다. 대학의 교육과 연구는 나라와 겨레의 내일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터이다. 대학은 어떻게 자존감과 생명력을 회복하려는지 고심해야 하고, 정부는 우리 대학이 대학답게 변화해 가도록 도와야 한다. 분명하게 새로운 대학 모델도 만나보고 싶고 대학과 함께 숨쉬는 사회에서 살아보고 싶다. 정치와 교육이 서로 돕기를 바라지만, 정부의 그늘에 대학이 머무는 모습은 그만 보고 싶다. 교육은 정치가 아니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