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Bell)을 울리는 종(Servant)의 삶
종(Bell)을 울리는 종(Servant)의 삶
  • 등록일 2019.08.25 19:30
  • 게재일 2019.0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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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시인은 말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땅바닥이라고 말하는 곳은 사실 하늘의 바닥이다. 땅바닥은 없다. 땅바닥은 땅의 머리다.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인간 중심주의가 땅의 정수리를 땅의 바닥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우리는 땅바닥이 아니라 땅의 정수리를 함부로 밟고 있다.”

그의 대표작 ‘농담’을 아시지요?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 /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해서 / 종은 더 아파야 한다.

강하거나 외로운 사람은 많은 것을 움켜쥐기 위해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나다움을 포기하고 세상의 각본에 휘둘려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인 것이지요. 3연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듭니다. 왜 갑자기 종이 나오는 것일까? 산뜻한 내용 전개에 감탄하며 고개 끄덕이다가 눈동자를 커지게 만드는 것이 3연입니다. 속도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사랑으로 충만한 삶으로 회복을 위해서는 아픔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시인은 일깨웁니다.

몸을 붓 삼아 언어를 남기는 사람들은 땅바닥이라 부르지 않고 지구의 정수리라 여기며 생태계를 지켜내려 안간힘 쓰는 반항아들입니다. 종메가 자신을 힘껏 내리쳐 아름다운 울림을 만들어 낼 때, 그 아픔을 견디는 이들입니다.

시인 정현종은 종메를 생각합니다. 종의 아픔보다 더 진한 종메의 아픔을 매일 같이 견대내며 삿된 생각들을 아침마다 잘라내고 밀어낼 때 비로소 우리 몸은 붓이 되는 모양입니다.

종이 되어 아름다운 울림을 세상에 보내기 위해, 더 깊고 충만한 소리를 내기 위해 하늘 바닥 저 아래 종(servant)의 자리까지 낮아져야 함을 깨닫습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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