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총선관련 보고서가 유출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더구나 그 내용이 지나치게 정략적이어서 국민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연구원은 지난 30일 민주당 의원 전원에게 ‘한일 갈등에 관한 여론동향’이란 제목의 대외비 보고서를 보냈다. 문제가 된 보고서에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여야 대응방식의 차이가 총선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이 78.6%로 절대다수였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면서 연구원은 “일본의 무리한 수출규제로 야기된 한일갈등에 대한 각 당의 대응이 총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의견이 많다”라며 “원칙적, 단호한 대응을 선호하는 응답이 자유한국당 지지층을 제외하고는 높게 나타났다. 원칙적 대응이 총선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 내용의 공개로 파문이 커지자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가 나서서 민주연구원 대표인 양정철 원장에게 ‘주의’를 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자칫 문 대통령과 청와대를 뒷받침해야 할 여당이 발목을 잡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연구원도 보고서 유출논란이 터진지 하루만에 입장문을 내고 즉각 사과했다. 연구원은 “당내 의원들에게 발송한 보고서는 적절치 못한 내용이 적절치 못하게 배포됐다”며 “충분한 내부검토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부적절한 내용이 나갔다.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주의와 경고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여당내 총선전략을 논하는 상당수 의원들이 ‘반일 대 친일’구도로 총선을 치르는 것을 호재로 반기는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다. 국가적으로 매우 위태롭지만 일본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적 반감을 감안하면 반일쪽에 선 현재의 민주당 입지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정치인들이 적지않다.

야당들은 일제히 “국익에 상관없이 총선 유불리 계산을 두드릴 때냐”며 여당이 총선을 위해 안보를 팔았다고 맹비난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집권세력은 자신들의 총선을 위해 안보를 팔고,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을 팔았다”고 비판했다.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나라가 기울어도 경제가 파탄나도 그저 표만 챙기면 그뿐인 저열한 권력지향 몰염치정권의 추악한 민낯”이라고 질책했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나라가 망하든 말든 국민이 살든 죽든 총선만 이기면 된다는 발상이 놀랍다”면서 “반일감정을 만들어 총선의 재료로 활용하는 민주당은 나라를 병들게 만드는 박테리아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사실 권력의 획득을 목표로 하는 정당으로선 자체 싱크탱크에서 국가적 현안에 대한 대응방향을 가늠해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조치가 우리 사회 전반에 크나큰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한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국민적 정서에 부합하고, 국가적 이익에 부합하는 지를 연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그 분석이 총선에서의 지지만을 겨냥해 대응방식을 제안하고 있기에 문제다. 단호한 대응이 총선에서 지지를 받는 데 유리하다고 해서 단호한 대응으로 일관했다가 실제 일본의 수출규제가 실현될 경우 입게될 국가적 피해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정략이라면 정략일 수 있는 내용을 담은 민주연구원의 보고서는 한마디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탐욕으로 눈 먼 권력의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보고서를 소속 의원 전원에게 돌리고도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내용이 나갔다”는 변명으로 사태를 무마하려는 민주당의 태도 역시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양정철 원장은 부끄러운 총선 보고서 사태에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