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욱 시인
김현욱 시인

소리 내어 글을 읽는 음독(音讀)에는 낭독(朗讀), 낭송(朗誦), 낭영(朗詠) 등이 있다. 음독이 자기 혼자서 소리 내어 읽는 것이라면, 낭독은 다른 사람이 듣는 것을 전제로 한다. 글의 정서나 운율, 이미지를 음성으로 전달하는 것이 낭독이다. 낭독은 혼자서 또는 같이, 순서를 정해서, 배역을 정해서 읽을 수 있다. 낭독 전에 글의 내용과 정서, 운율, 분위기 등을 파악하여, 듣는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음성의 높낮이, 길고 짧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고전평론가 고미숙 씨의 <낭송의 달인-호모 큐라스>에 따르면, 큐라스는 케어(care)의 라틴어로, 배려, 보살핌, 치료를 뜻한다. 고씨가 말하는 낭송은 책을 소리 내어 읽는 ‘낭독’이 아니라 ‘암송’하는 것이다. 암송은 암기와 다르다. 암기가 음소거 상태에서 의미 단위로 텍스트를 먹어 치우는 것이라면, 암송은 소리로 텍스트를 몸 안에 새기는 행위다. 고씨는 “낭송이란, 존재가 또 하나의 텍스트로 탄생하는 과정이다. 낭송을 일상화하면 자연스럽게 쾌락에 미혹되지 않는다”라면서 “낭송이 공부와 우정을 북돋우고 나아가 삶까지 바꾸는 독서법이자 양생법이다. 친구의 생일파티에 가서, 혹은 직장 동료의 결혼식장에 갔다가 니체나 스피노자, 공자나 연암 박지원의 문장을 듣게 된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선물이 되지 않을까.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친구나 동료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될 것이다. 우정을 나눌 준비가 된 것이다. 그게 바로 신체와 소리의 힘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2019년 6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스웨덴의 의회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신뢰’ 주제 연설에서 시 낭송을 했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고 하는 고장에서는, 그 중립국에서는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 기지도 탱크 기지도 들어올 수 없는 나라.” 신동엽 시인의 ‘산문시 1’을 낭송한 것이다. 1969년 서른아홉 나이에 요절한 신동엽 시인은 대표적인 한국의 참여 시인이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이 여름방학을 맞아 학급 장기자랑에서 트로트 가수 홍자의 ‘상사화’를 불렀다. 방과 후 수업에서 배웠던 우쿨렐레 연주나 댄스를 자랑하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요즘은 <미스트롯>에 나왔던 트로트를 부르는 게 유행이란다. 안타깝지만, 동요는 교실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학생들의 장기자랑은 아이돌 춤을 흉내내거나 가요, 랩이 대세다. 심지어 모 프로그램에서는 선생님들이 우스꽝스러운 변장을 하고 아이돌 춤을 추는 게 미덕인 것처럼 비춰진다.

신영복 교수의 <담론>에는 초등학생들과 시 암송을 하는 선생님이 나온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모아 시를 암송했다고 한다. 그중 한 아이가 학교에서 소풍을 갔는데 장기자랑 시간이었다고 한다. 역시나 아이돌 춤과 유행가가 대부분이었다. 드디어, 그 아이 차례가 되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그 아이는 윤동주의 ‘서시’를 암송했다. 반응은 뜻밖이었다. 그 아이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고 한다.

2008년 죽장초등학교와 상옥분교장에서 근무하면서 아이들과 시를 암송했다. 보름에 한 편씩 아이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시를 암송했다. 아이들의 부모님도 동참했다. 가을에 학급 시 암송 발표회를 열었다. 시 암송을 해보니 수많은 선현이 ‘암송’의 위대함을 전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임종식 경상북도 교육감이 시 암송을 즐겨 하고 관심이 많다고 한다. 학급에서 학교에서 시 암송, 시 낭송 콘서트가 우후죽순 생겨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