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500℃의 뜨거운 아연 국물과 씨름하고 돌아온 청년은 다음 날 밤에도 글을 한 편 뚝딱 지어냅니다. 숱하게 보아온 밑바닥 인생들이 펼치는 이야기입니다. 200자 원고지 20∼30매 정도 분량의 이야기 한 편을 지어내면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눈을 질끈 감고 게시판에 올리지요. 조금씩 댓글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아주 좋아요. 매일 올려주세요.”, “맞춤법이 틀리셨네요. ‘붇는다.’가 아니고 ‘붓는다.’라고 고쳐주세요.”, “궁금해서 끝까지 읽었는데, 띄어쓰기에 신경 써주세요.” 한 명, 두 명 팬이 늘어납니다. 청년은 댓글에 힘을 얻고 맞춤법에 대한 지식을 쌓아갑니다. 글을 쓰다 막히면 포털 사이트에서 글 잘 쓰는 법에 대한 자료를 찾아 연구합니다. 퇴근 이후 시작해 자정이 넘어서야 끝나는 글쓰기는 이렇게 매일의 의식처럼 청년의 삶을 파고듭니다.

나이 서른하나에 시작한 글쓰기. 그는 2∼3일에 한 편씩 꾸준히 글을 올립니다. 1년 6개월을 반복해 5천 자 분량 단편 소설 350편을 완성합니다. 원고지 1만 장 분량. 두꺼운 장편 소설 10권을 묶을 수 있는 탄탄한 콘텐츠가 맞춤법도 제대로 모르는 노동자 청년의 손끝에서 탄생합니다. 온라인 반응은 폭발적입니다. 게시물이 올라가면 순식간에 조회 수가 1만, 2만을 훌쩍 넘습니다. 글을 올린 후 자고 일어나면 폭풍 댓글들이 올라옵니다. 주물공장에서 일하는 일자무식 청년이 빚어내는 굴곡진 우리 사회의 모습에 사람들은 빠져듭니다.

2018년. 청년의 온라인 게시물은 책으로 묶여 서점에 등장합니다. 반응은 뜨겁습니다. 학벌도, 지식도, 세련된 문장력도 없는 무명 청년이 3권의 책을 동시에 세상에 내놓습니다. 두 달 만에 5쇄를 찍습니다. 2만 부가 순식간에 팔립니다. 연이어 4권, 5권도 책으로 묶어 나옵니다. 발간 두 달 만에 시리즈 합계 총 5만 부를 찍습니다. 괴력에 가깝습니다. 얼어붙은 한국 출판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이 청년, 이름은 김동식입니다.

먹구름 아래 인생 태풍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 안개 자욱한 미래로 마음이 묵직한 분들. 자신감이 떨어진 분들. 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한없이 우울하신 분들. 성수동 아연공장에서 뜨거운 아연 국물을 국자에 퍼 담으며 10년을 묵묵히 견딘 청년 김동식에게 인생을 함께 배우면 어떨까요?

몽테뉴는 말합니다. “괴로움을 슬퍼하지 말라 인생의 희망은 늘 괴로움이라는 언덕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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