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만 원을 주고 의자 하나를 구입했다. 행사장 같은데 흔히 쓰이는 접었다 폈다 하는 철제의자다.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면서 바람 좋고 그늘 좋고 경치 좋은 곳에 놓고 앉아서 한참씩 쉬곤 한다. 그게 그런데 신통력을 가졌다. 그 의자에 앉기만 하면 그곳이 바로 내 별장이고 산천초목이 다 내 정원이 된다. 그 의자 하나로 나는 도처에 별장을 둔 갑부가 되었다. 이게 그냥 농으로 하는 허튼소리가 아닌 줄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여름철에는 주로 들로 나간다. 들판을 가로질러 난 고가철로 그늘이 여름 한 철 내 별장이다. 요술의자만 갖다 놓으면, 수백만 평 정원이 딸린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별장으로 갖게 된다. 사방이 탁 트인 들판 한가운데는 어디선가 살랑바람이라도 불어오게 마련이다. 정 바람이 없으면 부채질이라도 하면서 여름의 한가운데 앉아있는 맛도 나쁘지가 않다.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나서 지구생태계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일 중에 이렇게 계절의 한가운데로 지나가는 일 말고 더 중요한 게 뭐겠는가. 사람이 가장 절실하게 살아가는 일도 바로 그렇게 온몸으로 계절을 사는 일이 아니겠는가.

초록 물결 넘실대는 여름 들판 위로 잠자리들이 난다. 한두 마리가 아닌 수백 수천 잠자리들이 군무를 펼친다. 가만히 보면 먹이활동이 아니라 놀이로서의 비행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드넓은 여름 들판에서 펼쳐지는 한바탕 생의 페스티발인 셈이다. 삶이 곧 놀이고 잔치라는 걸 보여준다. 눈부신 태양과 산들바람, 초록들판 말고는 아무것도 더 필요가 없는 잔치마당이다. 영겁의 세월 속에서 백년을 산다 한들 그 역시 찰라 일진대, 잠시 살다가는 잠자리들의 군무에서 생의 환희를 본다.

유명 여배우의 자살에 이어 이름 있는 한 정치인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세간에 충격을 주고 있다. 그 여배우는 영화의 개봉과 드라마 출연을 앞두고 있었고, 정치인의 경우 한때 정권의 실세로까지 올랐다가 지금은 비록 낙선을 한 처지지만 왕성하게 방송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객관적으로는 자살을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하였는지 모두가 의아해 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국가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고 한다. 최근 몇 십년간 자살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고속의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급변하는 경쟁사회 속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좌절감이 심해진 것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팽배한 물질만능주의가 정신적인 가치보다 우위를 차지하여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하고 공동체적 삶의 와해로 인한 인간관계의 단절과 고립감이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들판 한가운데 앉아서 산들바람을 맞으며 잠자리들이 나는 걸 보면서 문득 삶이란 게 무엇이며 무엇이 가장 절실한 삶의 조건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을 할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대부분 사회적인 조건 때문이다. 스스로 만든 사회로부터 받는 온갖 압박과 고통과 수모 때문에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이다. 삶의 기본조건은 그러나 사회적인 조건 이전에 햇빛과 공기와 물과 토양 같은 자연의 조건이 우선이다. 그런 조건들의 충족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누릴만한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곧잘 잊는다. 저 잠자리들의 군무가 보여주는 생명의 환희랄까 존재의 충일 같은 것 앞에서 인간의 사회적인 조건은 오히려 사소한 것이 될 것이다.

가진 게 남보다 적거나 명예나 지위가 비천해도 그게 그렇게 절박한 열등감이나 좌절감의 이유일 수는 없다는 것, 그런 인식의 전환이 바로 요술의자다. 이것이 황당한 소리로만 들린다면 당신은 지금 자승자박 탐진치의 질곡에 묶여있는 신세다. 인식의 전환이 삶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