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는 외떡잎식물, 즉 풀에 속하지만, 그토록 곧고 푸르고 높게 성장하는 데는 한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농부들이 씨를 뿌리고 보살펴도 대나무는 1년 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지요. 인내심을 갖고 2년 차 또 일편단심 정성껏 돌보지만, 결과는 무(無). 아무런 변화가 없고 싹조차 트지 않습니다. 또 한 해를 반복합니다. 3년 차. 드디어 결과가 보입니다. 30㎝ 죽순이 삐죽 땅 위로 솟아오르지만 거기서 스톱. 더 자라지 않습니다. 4년 한 해 동안 30㎝에서 끄떡하질 않습니다.

이게 전부 다 인가, 초조하게 바라봅니다. 다시 1년을 기다리며 투자합니다. 5년째 되는 해. 대나무는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이른바 퀀텀 리프(quantum leap). 마디마다 생장점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하루에 1m씩 자랍니다. 이 시기의 대나무는 1시간에 소나무가 30년 걸려 자라는 길이만큼 쭉쭉 위로 솟구칩니다. 필름을 고속으로 돌려 보면 마치 화살을 쏘아 올리는 것과 같은 속도일 테지요.

비밀은 뿌리에 있습니다. 4년 동안 대나무 뿌리는 지반을 움켜쥐듯 서로 얽히며 보이지 않는 흙 속 깊은 곳으로 뻗어 내려갑니다. 이 뿌리가 4년 기초를 닦았기에 하루 1m의 폭풍 성장, 퀀텀 리프가 가능한 5년 차를 맞이하는 겁니다.

기본을 죽어라 파고 포기하지 않았던 손정웅씨가 아들 손흥민을 교육한 방법이 대나무의 성장과 꼭 닮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신뢰. 인내. 폭풍 성장. 마침내 손흥민은 대한민국 축구의 선봉장으로 우뚝 서지요. 2010년 이래 손정웅에게 아이들을 맡겼던 많은 학부모가 언제까지 기본기만 가르치고 있을 거냐고 따지고 항의하면서 등을 돌렸지만 손정웅은 고집을 꺾지 않고 아들 손흥민으로 자신의 방법이 옳았음을 증명해 냅니다.

우리 교육을 돌아봅니다. 눈앞의 진로, 성적, 높은 자리를 추구하며 효율적이고 빠른 방법을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기본기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기본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교육이야말로 AI 시대에 흔들리지 않을 최고의 교육입니다. 교육의 기본은 ‘책’입니다. 손흥민이 ‘공’하나를 다루기 위해 8년을 투자한 것처럼, 진정한 배움의 길을 위해 ‘책’하나를 붙잡고 씨름하고 물고 뜯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야 퀀텀 리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먹구름 위 눈부신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는 기본기를 충실하게 닦아야 합니다. 그대와 함께 일궈 나갈 울창한 대나무 숲을 상상합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