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 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세상이 바뀌었다. 시간이 그저 흐르는가 싶어도 세월이 흘러가면서 많은 것들이 변화해 간다. 한때 우리는 스스로 ‘단일민족’이라 여기며 하나의 뿌리를 가진 민족적 순수성을 우리 문화의 독특한 자랑거리로 삼기도 하였다. 그러는 사이, 우리에겐 자연스럽게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경계하고 차별적으로 생각하는가 하면 배타적인 경향성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우리와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일 뿐인데, 왠지 모르게 함께 어울리기 어려운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21세기 글로벌화된 세상을 맞아 나라들 사이에 벽이 없는 교류가 많아지고 문화적 경제적으로 더불어 섞이며 살아가는 지구가 되었다. 다양한 배경과 출신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삶을 나누는 세상이 된 것이다. 다문화사회로 나아가는 새 지평이 이미 열렸다.

대한민국 인구의 10% 정도를 이른바 다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는 모든 사람이 일상에서 다문화를 만나며 함께 호흡해야 할 터이다. 이미 펼쳐지고 있는 다문화사회에 우리가 적절하게 준비되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예멘 난민들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그리 곱지 않았다. 정치적 망명이 인정될 것인지는 차치하고라도, 우리는 그들과 함께 같은 장소에 존재하는 일이 그리 편치 않았다. 어느 지방자치단체장은 다문화 가정을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잡종’이라든지 ‘튀기’라는 표현은 그가 가진 다문화인식의 낮은 수준을 보여준다. 베트남 출신 신부를 맞은 남편이 아이가 보는 앞에서 아내에게 폭력을 휘둘러 조사를 받고 있다. 그가 저지른 행위가 공분을 자아내지만 우리는 과연 다문화 현상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야 하지 않을까.

‘다문화’도 과제이지만 우리에겐 ‘지방색’도 있다. 영남과 호남, TK와 PK, 수도권과 비수도권, 이북과 이남…. 손바닥만한 나라에서 아마도 산과 강으로 나누었을 것으로 보이는 단절과 분단의 그림자. 조선의 임금들이 때때로 탕평과 대동을 시도했지만 그 효과는 신통치 않았다. 세상의 지평이 탁 트이고 시야가 넓어져야 하는 세상에 이제는 인식도 새로워 져야 하지 않을까. 혹 다른 이들에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이 거기 있었다면, 이제는 이해와 소통으로 영역과 지경을 넓혀가야 하지 않을까. 모든 지역에 대하여 마음을 열고 어느 인종이든 품을 수 있는 널푼수가 우리 문화와 습성에도 생겨야 하지 않을까. 글로벌환경을 시대가 허락한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서도 우리와 다른 이들이 이 땅을 찾는 일을 반겨야 하지 않을까.

글로벌 환경이 저 멀리 있는 것 같아도, 다문화를 적극 포용하고 우리의 문화로 만들면 글로벌 환경이 우리 안에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단절과 차별로 반응하기 보다 환대와 화합으로 받아들이면 다문화사회의 모범사례를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익숙하지 않아 먼저 내밀어지지 않는 손길도 더욱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용기로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 더욱 열린 나라를 지향하고 보다 개방된 사회를 열어가기 위해서 국가도 다문화정책에 전향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터이다. 다문화 이웃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과 따뜻한 배려가 보통 사람들의 태도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다문화는 다른 문화가 아니다. 다문화는 우리 문화로 들어오고 있다. 보다 다양하고 풍성한 새로운 문화의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는 중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다채롭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배타적으로 물리쳐 무채색 문화에 만족할 것인지. 선택은 자명해 보인다. 다문화가 우리 문화의 또 하나의 힘이 되도록 환영하여야 한다. 다문화사회가 글로벌환경을 이끌어 내도록 적극 안아주어야 한다. 21세기 다문화사회는 나로부터 열려갈 것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다문화는 우리 문화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