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2019년도 보낸 날이 보내야 할 날을 앞질렀다. 자연은 요란하지 않게 짙은 녹음 속에서 2019년을 마무리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 준비는 다름 아닌 비움이다. 자연은 비움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는다. 우유부단하지 않은 자연은 새로운 시작을 위해 뿌리까지 비우고 있다. 지금 자연이 보여주는 신록의 풍성함은 새로운 2020년을 맞이하는 자연의 자세이다. 분명 자연은 올해에 지난 10년을 정리하는 선 굵은 나이테를 그릴 것이다.

신록의 자연과 달리 인간 사회는 온통 잿빛이다. 대표적인 모습이 이분법(二分法) 사회로 퇴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이다. 현 정부 들어 이분법이 더 공고해지고 있다. 양분화를 부추기는 사회답게 이 나라 사람들도 철저하게 둘로 나뉘어져 있다. 한쪽은 창을 들었고, 다른 한 쪽은 방패를 들었다. 기를 쓰고 무너뜨리려는 자들의 독기(毒氣)와 더 기를 쓰고 무조건 막으려는 자들의 살기(殺氣)가 이 나라 소통의 기운을 다 끊어버렸다. 모순(矛盾)도 이런 모순은 없다.

그런데 정부는 삼척동자도 아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소통(疏通), 통합(統合) 등과 같은 말들을 앵무새처럼 떠들고 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무소불위 장군같다. 저돌적으로 무조건 밀어붙이고 보는 장군,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생각과 말만이 “무조건 맞다”고 하는 이상한 신념(信念)을 가지고 있다. 신념이 객관성을 잃으면 독단(獨斷)과 독선(獨善)이 되고, 이것마저도 넘어서면 속신(俗信)이 된다.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우리는 역사를 통해 보아 왔고, 또 지금 정치인들이나, 가까운 나라 정치 수장의 모습을 통해 보고 있다.

다음은 니체의 말이다. “(무식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진실을 알 생각이 없다. 강한 신념이야말로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 신념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다.”

필자는 교사가 되기 전부터 잘못된 신념의 감옥에 갇히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왜냐하면 교사의 잘못된 신념에 의한 평가와 판단은 학생은 물론 한 집안, 나아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사의 잘못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거나, 소중한 꿈을 접은 학생들을 수도 없이 봐왔다. 무책임한 말인지 알지만 그래도 이 자리를 빌려 필자의 잘못된 신념 때문에 상처를 받은 학생들과 학부모님께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해 더 노력할 것을 약속드린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오늘도 죠지 버나드 쇼의 유언을 필사(筆寫)한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나라 교육 관료들은 자신만의 정치 신념 감옥에 갇혀 ‘우물쭈물’을 넘어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것의 대표적인 모습이 정치 논리에 빠진 자사고 폐지와 자유학기(년)제 확산 등과 같은 교육 정책들이다. 전자는 이미 세간의 이슈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문제는 후자다. 자유학기(년)제! 이론적으로는 꽤 생각해볼만한 교육 정책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 현실을 대입해 보면 분명 재고(再考)되어야 할 교육 정책 중 하나이다.

필자는 2020년 산자연중학교 전입학 전형을 위해 최근 몇 주 동안 정말 많은 학부모들과 상담을 하고 있다. 상담 중 80%가 중학교 2학년 학부모들이다. 학부모들의 하나같은 이야기는 학생들이 자유학기(년)제 다음 학년인 2학년의 완전 달라진 학교 분위기에 전혀 적응을 하지 못 한다는 것이었다. 미리 1학년 때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그나마 적응을 하지만, 정부만 믿고 자유학기(년)제의 취지에 따라 사교육을 멀리 한 자신들의 자녀들은 학교를 거부하고 있다고 울먹였다. 심지어 자유학기(년)제가 아니라 초등학교 7년이라고까지 말하는 학부모도 있었다. 필자는 올해도 올해지만 내년 중3과 중2가 걱정이다.

곧 2020년이다. 우리 교육에 우물쭈물 할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