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지혜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왕에게 미움을 받아 긴 유배 생활을 떠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촌 동네에 틀어박혀 가끔씩 찾아오는 제자들을 가르칩니다. 18년 동안 수십명 제자를 길러내지요. 그런데 그가 길러내는 제자들마다 마지막에는 스승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버립니다.

왜냐구요? 깐깐한 이 스승은 제자들이 쉽게 버텨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출세를 위해 제자들의 뒤를 돌봐주는 일도 없습니다. 심지어 창을 들고 스승의 방에 뛰어들어 욕하고 헐뜯으며 등을 돌린 제자도 있었습니다.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산 정약용 이야기입니다.

유배지 전남 강진의 바닷가 마을에 정착, 다산이 작은 방 하나를 얻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까까머리 15세 소년 하나가 머리를 긁적이며 다산에게 묻습니다. “선생님. 저 같은 아이도 과연 공부를 잘 할 수 있을까요?” “네가 어때서 그런 말을 하느냐?”

소년은 말합니다. “선생님. 저에게는 세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머리가 둔한 것이요, 둘째는 앞 뒤가 꽉 막힌 것이며, 셋째는 분별력이 없어 답답한 것입니다. 이런 제가 과연 문사를 공부할 수 있겠습니까?”

다산은 답합니다. “배움을 갈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보통 세 가지 큰 문제가 있는데, 들어보니 너에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는 외우는데 민첩한 것이요, 둘째는 글짓기에 날렵한 것이요, 셋째는 깨달음이 재빠른 것이다. 하지만, 외우는데 민첩한 아이들은 금세 공부가 쉬워 보여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글을 날렵하게 짓는 아이들은 자기 재주만 믿고 글이 가벼이 들 떠 허황한 데로 흐르지. 이해력이 빠른 아이들은 투철하게 알지 못한 고로 그 지식이 오래 가지 못하는 법이다. 머리가 둔하다고 했지? 너처럼 머리가 둔한 데도 공부를 파고 드는 사람은 식견이 넓어진다. 앞 뒤가 막혔다고 했지? 그러나 그 막힌 것을 한 번 뚫게 되면 그 흐름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답답하여 분별력이 없다 했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연마하는 사람은 결국 지혜의 빛이 반짝 반짝 빛나게 된다. 그러면, 파고드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뚫는 방법은 무엇일까? 역시 부지런히 해야 한다. 연마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역시 부지런히 해야 한다.”

소년이 묻습니다. “스승님. 이 세가지를 부지런히 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부지런함을 지속할 수 있을까요?” 다산이 대답합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