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역사상 최악의 사건 중 하나인 탈리노마이드 기형아 출산 사건 피해자로 1959년 11월 독일에서 한 아이가 태어납니다. 팔 없이 어깨에 손이 달려있습니다. 손가락은 왼손 4개, 오른손 3개뿐입니다. 어른이 되어도 키가 134cm 밖에 자라지 않습니다.

심성이 유난히 고왔던 이 아이는 목소리 또한 빼어나게 아름다워 노래를 부르면 주위 사람들의 영혼이 맑아집니다. “토미, 너는 할 수 있어. 네가 원하는 음악을 계속하렴!”

토마스 크바스토프는 음악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18세 되는 해 하노버 음대에 지원하지요. 손가락이 일곱 개 뿐이라 오디션을 볼 기회도 받지 못하고 입학을 거절당합니다. 굴하지 않고 독학으로 성악을 공부하지요. 법학을 전공해 하노버 대학에 들어간 후 학교 앞 재즈 바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수많은 스승들로부터 성악 기법들을 전수받습니다. 스승은 CD음반입니다. 졸업한 후에는 은행원으로 취직합니다.

1988년. 토마스 크바스토프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제대로 된 음악 교육을 단 한 번도 받지도 않은 채 열악한 신체 조건을 넘어 뮌헨 ARD국제콩쿠르에 도전한 겁니다. 세계적인 음악 콩쿠르입니다. 이 대회 성악 부문에서 경쟁자들을 압도하며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때 그의 나이 30세.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를 세상에서 가장 잘 부르는 최고의 성악가 디트리히트 피셔디스카우의 찬사를 받으며 혜성같이 무대에 데뷔하지요.

토마스 크바스토프는 이후 질주하기 시작합니다. 쇼스타코비치 음악상, 에든버러 국제 음악 페스티벌 음악상, 파리 성악 음반 아카데미 최우수상 등 남들은 하나도 받기 힘든 최고 권위의 상들을 휩쓸며 바리톤 분야에서 최고의 반열에 오릅니다. 2012년 은퇴하기 전까지 20년 동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전 세계에 감동의 무대를 선물합니다.

어깨에 붙은 그의 손. 작은 키에 우스꽝스러운 외모를 지닌 그가 무대에 올라 슈베르트의 데어 린덴바움(보리수)를 노래하면 청중들은 꿈길 속으로 빠져듭니다. “성문 앞 우물가 서 있는 보리수 한 그루. 나 보리수 그늘 아래 단 꿈을 보았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겨 놓고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찾아온 보리수나무 밑. (중략) 그곳을 떠나 오랫동안 이곳저곳 헤매도 아직도 들리는 가지의 속삭임. 여기로 와서 안식을 찾으라.”

독학으로 성악을 마스터하고 세계를 울린 크바스토프, 그 작은 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보리수 가사 속에서 우리 꿈을 더듬거리며 찾아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