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열 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에도 나처럼 진실하고 믿음직스러운 자는 반드시 있겠지만, 나처럼 배움을 좋아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논어> ‘공야장’에 나오는 말이다. 평생 ‘학인(學人)’을 자처한 공구(孔丘)는 스스로를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아니라, 배워서 알게 된 자로 규정한다. 그래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명언을 남길 수 있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매일 쏟아지는 신간(新刊)을 읽고 싶은 마음에 죽음이 두렵다는 소회를 피력한 적도 있다.

지난주 ‘무등공부방’에서 광주의 향토사 전문가 김정호 선생의 강연이 있었다. 60년 가까이 전남과 광주의 인문지리와 역사, 인물을 두루 섭렵한 선생의 앎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광산 성씨 본관 이야기’가 주제였으나, 종횡으로 달리는 이야기의 향연은 특정분야에 한정되지 않는 것이었다. 혈연과 지연, 학연에 내재한 뿌리 깊은 공동체성에 대한 견해는 인상적이었다. 그러하되 섬과 바다에 대한 소략한 말씀이 가슴에 닿았다.

선생이 내세우는 명제는 간명하다. “한국의 미래자원은 바다와 섬이다!” 그 말씀을 듣자니 익숙한 구절이 생각난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島嶼)로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다. 여기서 ‘도서’라는 말이 낯설다. ‘도’는 섬, ‘서’는 작은 섬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한반도와 그에 딸린 크고 작은 섬이 우리나라 영토라는 얘기다. 해양영토 바다가 빠져있다.

선생에 따르면, 대한민국 육지영토 면적의 8배에 이르는 바다가 한반도에 부속돼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발전하려면 바다와 섬을 도외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에는 3천358개의 섬이 있는데, 유인도가 482개, 무인도가 2천876개에 이른다. 섬과 바다를 개발하는 것이 ‘국토균형발전’의 첫걸음이라고 선생은 목소리를 높인다.

1952년에 ‘낙도중흥법’을 제정한 일본은 모든 섬을 육지의 지자체와 결합시켰다고 한다. 본토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을 동경(東京)과 결합하여 섬을 발전시키는 정책을 70년 가까이 실행해온 일본. 우리는 1980년대에 비로소 섬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으나, 일본을 따라잡기는 족탈불급(足脫不及)이다. 정부주도로 <섬>이란 잡지를 간행하고, 해마다 5만여 섬 주민이 동경 한복판을 시위한다니 그럴 법하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모든 것은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런 까닭에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요상한 분류마저 생겨났다. 일기예보 하는 사람들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이런 표현이 적절함에도 ‘수도권’이란 말을 반드시 발화(發話)한다. 그렇다보니 대한민국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런 현상은 ‘비수도권’에서 되풀이된다. 광역시권역과 여타 지역으로 나뉘는 것이다. 대구나 광주, 부산과 대전을 중심으로 사건과 사고, 일기예보가 나오고 난 다음에야 여타지역이 거명된다. 그러기에 육지가 아닌 바다와 섬 이야기는 ‘딴나라’ 이야기처럼 아득하다. 하지만 거기에도 사람이 살고, 문화와 예술이 흐르고, 추억과 역사가 있다. 섬과 바다는 ‘그 섬에 가고 싶다’ 따위의 가벼운 오락과 유희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근대를 열어젖힌 유럽제국의 출발은 바다였다. 작은 돛단배를 타고 그들은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들었고, 급기야 육상제국 청나라와 러시아를 능가하는 세계제국을 성립시켰다. 가뜩이나 넘쳐나는 사람들로 아우성치는 지구촌의 미래는 바다와 섬에 있을 듯하다. 해수욕장 개장시점에 잠시 섬과 바다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