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희수필가
김순희 수필가

이윽고 노란색이다. 베란다로 나가니 아침 햇살이 수국의 뺨을 어루만진다. 꽃은 평생 동안 한 색깔을 고집하는데, 필 때부터 지기까지 수국은 햇살과 숱한 밀어를 주고받으며 색깔을 바꾸었다.

삼촌은 수국을 즐겨 그렸다. 거실 벽은 늘 삼촌의 화랑이었고 요즘에는 수국이 한가득 피어 있다. 내가 감탄하자 삼촌은 일 년 전에 그렸지만, 아쉽게도 실패한 작품이라고 했다. 아니 화사하게 벙싯거리는 수국이 화면 가득 피어있어서 보는 내가 다 환해지는데 왜 실패작이냐고 물었다. 말 수가 많지 않은 삼촌은 작품의 제목은 ‘변심’이라며 그동안 그림 속에서 일어난 일을 조곤조곤 들려주었다.

수국이 한창인 여름에 그리기 시작했다. 수채화를 그릴 때, 먼저 꽃송이를 그릴 부분에 마스킹 고무액을 칠하는데, 그래야 물감색이 종이에 곱게 먹는다. 그 해 여름이 어찌나 뜨겁던지 잠시 그림을 손에서 놓은 사이에 마스킹 액이 굳었다. 늦어도 한 달 안에 벗겨내야 하는데,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채 수국의 꽃 색을 입혀 그림을 완성했다. 벽에 걸린 지 6개월이 지나자 수국은 살아있는 것처럼 절정의 보랏빛에서 꽃이 질 때처럼 노랗게 변해가더란다. 마치 그림 제목에 맞추려는 듯.

쪽지를 수십 개 접어 소복이 뭉쳐놓은듯한 봉오리, 나는 쪽지에 곱게 접힌 비밀을 하나씩 펴 보고 싶어졌다. 거기에는 ‘풀’이 아니라 ‘나무’라고 불리는 이유와 수국의 내력이 꽃들의 알파벳으로 적혀있는 것 같다. 사람이 알지 못하는, 그래서 더 궁금한 꽃들만의 정서가 ‘내 속마음을 읽어보라’며 나를 애타게 할지 모른다. 그런 이끌림에 나는 시장에 나가 참하게 보이는 수국 한 그루를 데려왔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무엇보다 먼저 베란다로 나가 안부를 살피게 되고, 밤새 오종종 붙어 자다가 햇빛을 향해 기지개를 켜는 소리에도 귀 기울인다. 한 치씩 커갈 때마다 그동안 보지 못한 식물의 새로운 변화를 발견하게 된다. 땅의 소리에 오래 귀 기울이느라 수국은 아직 풀에 가깝다. 흙의 양분을 한 모금이라도 더 찾으려고 뿌리를 잘게 뻗는다. 발끝에서부터 색을 흠뻑 빨아올려 연둣빛 꽃을 부풀린다. 좁쌀 알갱이 같은 모습으로 입을 앙다문 채 한 달을 버틴다. 연륜을 쌓고 생각이 깊어지면 풀도 나이테를 품을 수 있다고 믿기에 수국은 피어나기를 거듭하는지도 모른다. 나이테가 늘어나면서 우리도 무르익는 것처럼 말이다.

창밖에 여름 기운이 완연해지자 수국이 속내를 토해냈다. 연두 알갱이에서 어린 고양이의 귀 같은 꽃잎을 내밀었다. 수줍은듯 하나를 펴는가 싶더니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 ‘퐁퐁’ 소리가 났다. 네 귀를 다 열었나싶던 날부터 연둣빛 꽃잎 끝이 파리해졌다. 끝에서부터 시작한 푸름이 서서히 스며들어 봉오리 전체에 번졌다. 곧 푸른 꽃불이 인다. 꽃불을 진화하려는 듯 보슬비가 더해지자, 이 때 비로소 수국은 촉촉해지며 진정한 수국이 된다.

한 계절 마주하며 수국을 알았다. 수국은 빛깔로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토양이 중성이면 백색 꽃이 피고, 산성이면 청색 꽃이 피고, 알칼리성이면 분홍색이 핀다. 흰 꽃의 수국에 백반을 녹인 물을 뿌려주면 청색으로 변하고, 잿물이나 석회를 뿌려주면 분홍색으로 변한다. 이는 식물학자의 말이지만, 오래도록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수국의 표정과 내면을 이해한다면 실험 결과만으로 그 이유를 단정하지 못할 것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빛이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어느새 나도 나이테가 겹겹이다. 연둣빛 나이 십대에는 비 오는 날이 싫었다. 하지만 갈맷빛 더욱 짙어가는 요즘에는 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러 수목원을 찾아가기까지 한다. 설익은 나이에는 변심이 부끄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이 되자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나타내고 싶은 색깔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변심은 사물을 보는 마음의 눈이 무르익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