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스마트폰 및 TV에 사용되는 반도체 등의 제조 과정에 필요한 3개 품목의 소재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밝히자 정부와 제조업계의 구멍뚫린 소재산업 정책에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세 품목은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기판 제작 때 쓰는 감광제인 리지스트, 반도체 세정에 사용하는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이들 품목의 한국 수출 절차를 간소화하는 우대 조치를 취해왔으나 한국을 우대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오는 4일부터 수출규제를 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일본이 수출규제에 나선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리지스트는 세계 전체 생산량의 90%, 에칭가스는 약 70%를 일본이 점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 이들 소재를 공급받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을 우려가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대법원이 작년 10월 30일 징용 피해자들이 배치됐던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을 시작으로 위자료 지급을 명령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리자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국제법 위반 상태가 됐다며 한국 정부에 이를 시정하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사법부 판결에 개입하지 않고, 피해자 중심의 해법을 모색한다는 기조를 유지하며 본격적인 대응을 피해왔고, 일본 측은 청구권협정에 규정된 분쟁처리 절차를 밟는 것으로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끝에 이같은 수출규제에 나선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조치에 대해 “WTO 협정 위반”이라며 WTO에 제소하는 등 국제법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일본측은 들은 척도 않은 채 수출규제를 강행할 태세다. 어쨌든 한일관계가 최악의 사태로 치닫게 된데는 우리 정부의 안일한 외교·경제정책 탓도 크다는 지적이다. 우선 일본이 한국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강경하게 반발하고 있는데도 분쟁처리절차 진행에 소극적이었던 것이 일본정부의 화를 돋우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사태로 번진 것이다. 더구나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한국 수출 규제 조치가 이미 지난 5월 결정된 최종안에 따른 수순이라는 일본 언론의 보도를 감안하면 이런 사태로 번질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정부의 정보력 부재도 매우 걱정스럽다.

무엇보다 우리 기업들이 첨단 소재부품과 장비들을 주로 일본에서 수입해 수출상품을 만드는 걸 뻔히 아는 정부가 수입선 다변화에는 신경도 쓰지 않다가 한일관계 악화로 역풍을 맞은 뒤에야 대책마련에 허둥대는 모습은 참으로 한심스럽다. 이제라도 정부와 업계가 힘을 모아 수입선 다변화는 물론이고 기술개발을 통한 국산화를 통해 일본에 대한 수입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이처럼 한일관계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 데는 일본의 솔직하지 못한 역사인식에도 이유가 있지만 일본에 의존적인 우리 경제현실에도 원인이 있지 않은가 싶다. 경제적 현실에서 ‘갑’인 일본이 ‘을’인 한국을 존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