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지난 1992년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 이면우 교수가 내놓은 ‘W이론’은 반향이 대단했다. ‘W이론’은 한국인의 전통적 기질인 신바람과 흥을 산업현장과 우리 생활에서 불러일으켜 어려운 상황을 획기적으로 돌파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 교수의 저서 ‘생존의 W이론’에 나오는 ‘황포돛대 이론’은 어디로 가는 배인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노만 젓고 있는 어리석은 행태를 통렬히 비판한다.

집권 3년 차에 들어선 문재인 정권의 실정 행태가 심각하다. 거의 전 분야에 있어서 난정(亂政)이 확산하고 있다. 문 정권이 핵심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북한 비핵화’를 통한 안보 추구부터 여의치 않다. 북한과 미국 틈바구니에서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지만,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 한국외교는 한마디로 ‘개밥에 도토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미국은 미국대로 흔쾌한 모습이 아니고, 북한은 또 나름대로 서운한 표정이 역력하다. 문 대통령이 자처했던 조정자 역할에서 한계를 드러내면서 모종의 오해를 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군 철수’를 포함하는 김정은의 ‘조선반도 비핵화’ 개념을 문 대통령이 미국과 우리 국민에게 ‘북한 비핵화’로 잘못 의역(?)한 업보로 읽힌다.

정치 분야는 끊임없는 보복 논란으로 점철되고 있다. ‘적폐청산’의 탈을 쓴 조직적이고 악착같은 정치보복은 이 나라 정치력 진화의 발목을 잡는 참담한 족쇄다. 야당과 유례없는 소통을 통해 새로운 정치문화를 일궈가리라 기대했던 문 대통령의 정치력은 금세 바닥을 드러내고, 70%가 넘는 국민지지율에 만취해 적대 정치의 적폐만 산처럼 쌓아 놓았다.

경제는 또 어떤가. 아무런 검증도 안 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희한한 경제정책을 들고나와 최저임금을 왕창 올리는 바람에 근근이 중산층의 꿈을 일궈가던 수많은 뒷골목 영세상인들을 거지로 만들었다. 아르바이트비 인상으로 대한민국 경제 활성화를 꾀한다는 만화에도 안 나올 얄궂은 논리로 나라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고도 반성조차 없이 직진이다.

이쯤 되면 야당이 떠야 맞다. 집권당이 연달아 죽을 쑤고 있는 동안 이 나라의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한술 더 떠서 개죽을 쑤고 있다. 수십 년 독과점 지역주의의 뜨뜻한 청백전 정치의 관성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듯한 자유한국당의 지리멸렬은 차라리 고질병이다. 서 푼어치 가치도 없어진 극우 꼴통의 논리로 제자리 땅따먹기나 하자는 치들의 악센트만 높아지고 있다.

그리 멀리 갈 것도 없다. 섣부른 인적청산에 앞서 ‘가치논쟁’부터 시작하겠다던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대위원장 시절의 밑그림을 다시 묻는다. 자유한국당은 지금 ‘수구꼴통’·‘반평화 세력’·‘부패집단’·‘부자들만 편드는 정치인’·‘기득권 수호세력’·‘패거리 정치의 화신’ 따위의 부정적 이미지를 청산했는가.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였던 황교안의 등장은 화려한 변수였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서 황교안의 안착은 90%가 문재인 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사작용에 불과하다. 집권세력의 행태가 싫어서 욕하고 돌아서면 그래도 한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긴 했다. 그런데 잠시만 더 바라보면 도대체 뭐 하자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여야를 불문하고 다들 부지런하다. 정부 여당은 포장만 그럴싸한 서툰 정책 속으로 애꿎은 국민만 숱하게 욱여넣어 울리고 있다. 혹시나 하고 돌아보면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더 한심하다. ‘가치논쟁’은 결론을 냈는지 말았는지, 시대정신은 깨달았는지 말았는지 권력 연장에만 혈안이 된 구닥다리 정치꾼들의 욕심 사나운 궤변만 난무한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노를 저어대고 있는, 어리석은 지도자들이 이끄는 한심한 ‘황포돛배’ 위에서 대한민국 민초들은 지금 덧없이 표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