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마주하는 삶의 모순 날카롭고 재기발랄하게 포착
일상에서 마주하는 삶의 모순 날카롭고 재기발랄하게 포착
  • 윤희정기자
  • 등록일 2019.06.27 20:03
  • 게재일 2019.0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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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밤을 열면서’
권성훈 지음·실천문학사 펴냄
시집·1만원

2002년‘문학과 의식’에 시가, 2013년 ‘작가세계’에 평론이 당선되며 전방위적인 글쓰기를 해 온 권성훈 시인이 시집 ‘밤은 밤을 열면서’(실천문학사)를 출간했다.‘배꼽’을 비롯한 59편의 시가 수록돼 있는 이번 시집에서는 “사물을 읽는 몸”의 언어들이 재기발랄하면서도 날카롭고 촘촘하게 펼쳐진다. 시인은 자신의 생활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물상)들로부터 삶의 단서들을 예리한 감각으로 포착해 독자들 앞에 제시한다. 권성훈은 사물 겉으로 보이는 상식의 외간을 벗기고 적나라한 삶의 ‘비밀’과 ‘실상’을 우리 앞에 드러내 보여 줌으로써 새로운 미학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권성훈의 시편들은 파란만장한 생의 굴곡이 육체에 고스란히 부기(附記)되는 현장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시에 즐겨 등장하는 장기, 살가죽, 명치, 뼈, 심장, 폐부, 꼬리, 힘줄, 아가리, 혀, 고막, 오장육부, 내장 등은 우리가 세상을 건너갈 때 세계의 측량할 수 없는 힘이 가한 충격을 흡수하는 장소다.

권성훈 시인
권성훈 시인

권성훈의 시에는 자본주의 시대에 넘쳐나는 물성(物性)과 피 내음이 짙게 배어나는데, 특히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장면들에 주목함으로써 삶의 모순과 부조리함을 그만의 방식으로 그려낸다.

“살아서 입지 못하는 황홀한 옷 한 벌/저승 가는 길을 꼼꼼히 재단해/이제야 나를 위해 떳떳하게 나를 입어 보는 것/스스로 입지 못하는 생애의 끝 한 벌 입는 거야/매일같이 시작되는 하루를 내 손으로 갈아입지만/벗었던 세월만큼 주름진 길/그 길을 세상 밖에서 지우는 화려한 복화술/거울의 눈치를 살폈던 관절 마디를 섞어서/내가 안 보일 때까지 나를 반죽해 줘/손댈 수 없을 때까지 후끈 달구어지면/내 몸도 이렇게 눈부신 뜨거움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 ‘유쾌한 치킨’부분

‘유쾌한 치킨’은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음식의 하나인 ‘치킨’으로써 인간 삶의 야만성을 찔러 댄다. 이 시의 화자는 알몸으로 튀겨져 인간들의 식탁 위에 올려질 치킨인데, 인간들의 무지막지한 탐식욕의 희생양이 되어 지상에서의 짧은 삶을 마감하게 된 치킨의 마지막 반어적 야유, “내 몸도 이렇게 눈부신 뜨거움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라는 말은 자본주의 시대 속 인간의 단말마처럼 여겨져서 섬뜩함을 안겨 준다.

‘밤은 밤을 열면서’는 이처럼 지금 세계가 병들어 있음을 뼈아프게 느끼며 자신의 삶을 질료 삼아 몸으로 겪어 나가는 한 시인의 정신적 풍경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삶 주변에 널린 사물들, 물상들 속에서 그것들의 외관, 그것들이 피워 내는 냄새, 그것들의 황폐한 존재 방식으로부터 자신이 살아가며 견뎌 내는 세계를 처절하게 인식하며, 맞부딪혀 나아간다. 그 처절한 인식과 항거의 몸짓이 바로 이 시집의 제목 ‘밤은 밤을 열면서’와 일맥상통하며 닿아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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