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 신공항 문제가 결국 부산·울산·경남의 뜻대로 갈 모양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4년 전 정부가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검증하고 어렵게 결정했던 국책사업이 일부 광역단체장의 반발에 굴복하고 만 셈이 됐다. 이미 종료된 국책사업이 해당 부처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총리실에서 검증하는 나쁜 선례도 남기게 됐다.

20일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과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만나 영남권 신공항으로 확정된 김해 신공항에 대한 검증을 총리실에서 진행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면서 부울경 단체장 중심으로 밀어붙인 김해 신공항 재검증 문제는 해당부처인 국토부의 반대를 넘어서면서 이제 정치적 힘에 의해 좌우되는 모양새를 취하게 된 것이다. 국민이 보기에 정부 정책에 대한 믿음이 이 정도인가 싶은 생각을 들게 했다. 정권이 바뀌면 결정된 국가 정책도 정치력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 깡그리 무너진 꼴이 됐다.

문제는 김해 신공항은 2016년 당시 영남권 5개 시도지사가 합의한 내용인데도 대구·경북단체장의 털끝만 한 동의도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5개 단체장은 국제적 공신력을 가진 기관의 연구결과를 신뢰하고 그 결과를 존중하기로 약속한 사안이다. 재론의 여지가 없다. 김해 신공항은 영남권 관문공항으로 추진하는 우리나라 제2의 국제공항 역할을 하게 된다. 부산, 울산, 경남도민뿐 아니라 대구, 경북도민들도 수혜자이다. 그들의 동의도 당연히 있어야 할 사안이다.

부산, 울산, 경남도가 대구·경북을 빼고 국토부와 합의한 것은 영남권 관문공항의 건설 취지를 망각한 일이며 절차조차 맞지가 않다. 대구경북민들이 반발하고 성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유한국당 TK발전협의회가 대정부 투쟁을 선언했고, 여당인 민주당 대구시당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특히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는 것 아니냐 하는 점이다. 부울경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에 대한 의도적 갈라치기 전략으로 민심을 이간하겠다는 것이라면 더 한심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 정부 들어 대구경북은 인재 등용과 예산 배정에서 많은 소외감을 느껴왔다. 실제로 각종 장차관급 인사에 대구경북 출신은 눈곱 만한 배려도 없었다. 지역민이 받은 정부에 대한 실망감은 매우 크다 할 것이다. TK패싱으로 통하는 현 정부의 대구경북에 대한 시각이 김해 신공항 재검증으로 또다시 이어진 것이라면 대구경북민 결코 용납할 수가 없다.

이번 합의에 대해 청와대와 총리실은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김해 신공항 검증이 가덕도 신공항 현실화와 연결된다면 그 후폭풍 역시 만만치 않음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대구경북이 빠진 김해 신공항 합의문은 온 국민을 갈등국면으로 몰아세울 뿐 국가적으로 도움될 일이 하나도 없다. 바로 철회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