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낚시 수상 <하>

라고스 바다의 기암괴석과 작은 동굴들을 탐사하는 보트 투어.

불확실성과 우연성, 낯섦과 새로움은 낚시의 매력인 동시에 여행의 기쁨이기도 하다. 특히 외국의 강과 바다에서 즐기는 낚시는 여행을 몇 배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70대 노장들과 함께 한 ‘반나절의 독배’
레드 스내퍼·화이트 브림·갑오징어까지
대서양 다양한 어종과 만난 황홀한 시간
‘서로에게 이방인’들이 특별한 존재로

블루샤크호의 두 노장, 선장 루스(오른쪽)와 그의 오랜 친구 마누엘.
블루샤크호의 두 노장, 선장 루스(오른쪽)와 그의 오랜 친구 마누엘.

‘트립 어드바이저(Trip Advisor)’ 웹사이트를 이용하면 외국 여행지의 숙박업소와 맛집, 관광명소 등은 물론이고 낚시를 포함해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특히 강이나 바다를 낀 여행지에는 전문 가이드가 동행하는 낚시 투어 상품들이 있다.

지난겨울, 포르투갈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라고스(Lagos)에 가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리스본에서 남쪽으로 400㎞ 가량 차로 달리면 라고스에 닿는다. 포르투갈 남부에 위치한 휴양지로 북대서양을 끼고 있는데, 총천연색 바다와 기암괴석들이 장관을 이뤄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그 보석 같은 해안도시에서 이틀을 보내기로 했다. 대서양에서 낚시하는 꿈을 이루고자 ‘트립 어드바이저’를 통해 현지 낚싯배 업체에 선상 낚시 예약을 했다. 라고스에는 낚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여러 선사(船社)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페스카마르’와 ‘블루샤크’ 두 팀이 활발하다.

두 업체 모두 초보자들도 쉽게 할 수 있는 체험 낚시부터 전문 낚시꾼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어, 돛새치 등 대형 어종 낚시까지 고객의 수준에 맞춘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두었다. 나는 최소 비용으로 대서양의 다양한 어종을 만날 수 있는 근해 체험 낚시를 선택했다.

라고스에서 낚시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여행 자랑 좀 해야겠다. ‘세상의 끝’으로 잘 알려진 호카곶(Cabo Da Roca)의 석양을 볼 땐 시간이 정말 멈춘 것만 같았다. 절벽까지 솟아오른 파도가 야생 백마가 되어 달려드는 아제나스 두 마르(Azenhas Do Mar)의 장관은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포르투갈 중부 산악지대의 옛 요새마을인 몬산토(Monsanto)에 가 중세의 시간을 그대로 간직한 지붕들로 내려앉는 저녁해에 마음을 내어 말렸다. 모로코 마라케시(Marrakech)에서부터 만년설 쌓인 아틀라스 산맥을 지나 뙤약볕이 쏟아지는 사하라 사막을 낙타 타고 이동했다. 사막에서의 밤, 세계 각국의 친구들과 모닥불 피우고 술을 마셨다. 고개를 들면 사막 모래보다 더 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어둠보다 별이 더 많은 밤을 태어나서 처음 봤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별빛 아니 별비를 카메라로 담을 수 없었다.

여행은 삶에서 잃어버린 감동하는 능력, 감동하는 마음을 회복시켜준다. 익숙한 일상의 자리를 떠나 말도 음식도 풍경도 사람도 생경한 곳에서 철저한 이방인이 될 때의 고립감은 영혼을 위축시킨다. 하지만 조금씩 그들과 동화되어 마침내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부터 ‘나’는 이전의 ‘나’가 아니다.

여행의 모든 아름다움들이 처음부터 내게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낯설고 두렵던 이국의 풍경과 사람들이 비로소 내 마음에 들어오게 됐을 때, 세상은 내게 전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곳이 되었다. 낚시도 마찬가지다. 낚시를 할 때면 지루한 일상에서 잃어버린 ‘경이’를 되찾는다. 늘 반복되는 업무, 풍경, 사람, 공간을 벗어나 자연과 만나면 모든 게 다 신기하다.

낚시로 잡은 생선을 요리해 호스텔에서 근사한 저녁 식사를 즐기는 중이다.
낚시로 잡은 생선을 요리해 호스텔에서 근사한 저녁 식사를 즐기는 중이다.

우리 삶은 너무 뻔하다. 일상이라는 것은 보통 예측이 가능하고, 우연함이나 미지의 영역이 없다. 그런데 낚시는, 저 물속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세계가 있는지 모르면서 강과 종일 마주보고, 바다와 대화하는 행위다. 그 대화를 통해 자연과 마침내 동화될 때, 낚시꾼은 더 지혜롭고 내면이 풍부한 사람으로 성숙된다.

아침 6시, 리스본 ‘셋 리오스(Set Rios)’ 터미널에서 버스에 올랐다. 전날 먹다 남긴 ‘파스테이스 드 벨렘(Pasteis de Belem)’의 유명한 에그타르트를 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넉넉한 빈 공간에 다리를 쭉 뻗고 한숨 잤다.

버스는 포르투갈 최대의 항구도시인 파로(Faro)를 경유해 10시쯤 라고스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나오자 남부 이베리아반도의 햇살이 과즙처럼 쏟아졌다. 12월인데도 5월처럼 화사하고 따뜻했다. 항구와 인접한 어느 바(Bar)에 가서 핫도그와 콜라를 먹었다. 휴양지답게 사방을 활짝 열어둔 개방감과 레게풍의 경쾌한 댄스음악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미모의 웨이트리스와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사람들은 민소매와 반바지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했다. 나는 오전엔 작은 보트를 타고 라고스 앞바다의 해안 동굴과 기암괴석을 탐사하는 보트 투어를 체험했다. 신비한 빛으로 일렁이는 라고스 바다, 이런 항해라면 몇 달쯤 표류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생에 신혼여행이 가능하다면 장소는 무조건 라고스라고, 이루어지지 않을 꿈도 잠시 꿔봤다. 헛꿈에서 깨 에메랄드빛 바다 표층을 떼로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보니 오후에 예정된 선상 낚시가 무척 기대돼 가슴이 쿵쾅거렸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네 시간 동안 나만 태우고 출항하는 반나절 독배, 200유로를 지불했으니 독배치고는 무척 저렴한 편이다. 물고기만 잘 잡혀준다면 최고의 가성비를 기대해볼 만하다.

선장 루스와 그의 친구 마누엘이 나를 반갑게 맞았다. 둘 다 70세의 노장들, 우리 셋은 영어를 못해 몇 개의 단어와 몸짓으로만 대화했다. 그러나 낚시꾼들에게는 낚시가 만국공용어다. 금방 살가워져서 낚시 이야기로 침을 튀기는 사이 포인트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선상 감성돔 낚시에 주로 쓰는 카고낚싯대 비슷한 릴대에 골동품 아니, 둔기 수준인 구형 6000번 릴, 두꺼운 나일론줄에 봉돌을 달아 새우 미끼를 내리는 생미끼 낚시였다. 마누엘이 방법을 설명하고 시범을 보였다. 루스와 마누엘과 나는 나란히 서서 채비를 내리고 부지런히 고패질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질이 들어왔다. 레드 스내퍼, 화이트 브림, 옐로우 브림, 그루퍼 등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그런데 마누엘 쪽을 슬쩍 보니 그는 봉돌에 에기 하나를 달아 새우 미끼와 함께 내리는 게 아닌가? 물어보니 대형 갑오징어가 종종 잡힌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에기를 하나 얻어 봉돌에 달았다. 그리고 얼마 후, 큰 입질을 받았다. 엄청난 당길심, 한참을 씨름한 끝에 갑판에 올린 녀석은 초대형 갑오징어였다. 그렇게 큰 갑오징어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 그 녀석이 마누엘의 얼굴에 먹물을 뿜어 배는 한바탕 폭소의 도가니가 됐다.

이후로도 입질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물고기 입질도 좋지만 사람 입질도 좀 하자며 선장 루스가 병맥주를 건넸다. 푸르디푸른 대서양 위에서 낚시를 즐기면서 마시는 시원한 맥주는 순간을 영원으로, 이곳을 천국으로 바꿔냈다. ‘태양은 가득히’의 알랭 들롱이 된 기분이 들었다. 뙤약볕을 받아내선지, 맥주 한잔의 취기 탓인지, 프랑스 미남이 된 것만 같은 황홀감 때문인지 얼굴이 붉게 익은 나는 저녁보다 먼저 석양의 표정을 지었다.

라고스 바다의 기암괴석과 작은 동굴들을 탐사하는 보트 투어.
라고스 바다의 기암괴석과 작은 동굴들을 탐사하는 보트 투어.

대서양의 태양이 은은한 금빛으로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낚시를 마쳐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왠지 뭉클해져서는 코를 훌쩍거렸다. 라고스 바다에서 낚시한 오후 반나절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임을, 다시 만날 수 없을 시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늙은 선장 루스와 그의 친구 마누엘, 그리고 나 셋이 함께 블루샤크호 후미에 서서 낚싯대를 드리울 때, 선실에 틀어놓은 올드팝 라디오에선 마침 ‘We are the world’가 흘러나오고, 늦은 오후의 해거름은 대서양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내가 운 좋게 잡은 초대형 갑오징어가 마누엘의 얼굴에 먹물을 뿜던 순간, 루스와 나는 정말 웃다가 눈물을 흘릴 만큼 박장대소했는데, 그건 삶에서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완전한 평화이자 완벽한 행복이었다.

천진하고 바보 같은 아이들처럼 “컴온 피쉬!” “피쉬, 피쉬!”를 외치며 낚시하던 우리는 저무는 해를 뒤로 한 채 항구로 돌아왔다. 불과 네 시간이었지만 한 편의 긴 모험이 끝난 느낌이었다.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고 헤어질 때,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았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했으니까. 그렇게 ‘서로에게 이방인’이었던 우리는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여행과 낚시의 가장 아름다운 본질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수십 마리 물고기를 다 가져가라는 걸 극구 사양했다. 허름한 호스텔 공용주방에서 요리하기엔 세 마리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낚시로 잡은 고기 중 붉은 돔 한 마리와 이름 모를 생선 두 마리를 챙겼다.

호스텔 관리인에게 잔소리 들을까봐 아예 부두에서 비늘을 치고 내장을 손질했다. 라고스항에서 호스텔은 도보로 10분 거리, 슈퍼마켓에 들러 혹시 고추장이 있을까 찾아봤는데, 병에 한복 입은 여인이 그려진 ‘코리안 스파이시 소스’가 있어 집어 들었다. 간장도 구입했다. 아쉽게도 와사비는 진열대에 없었다.

한 마리는 회를 뜨고 두 마리는 구웠다. ‘코리안 스파이시 소스’는 우리가 흔히 피자에 뿌려 먹는 핫소스와 유사해서 회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간장을 찍은 회 맛을 음미하며, 오렌지나무 정원에서 만찬을 즐겼다.

필리핀 출신으로 독일에서 여행사를 다니고 있는 ‘엘리’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온 ‘아일라’와 회 한 점, 와인 한 잔을 나눠 먹었다. 둘 다 필리핀과 네덜란드를 대표할 만한 미인이었다. 두 미녀에게 내 시집을 선물하고 한국어 공부해서 꼭 읽으라고 했다. ‘Orange3’ 호스텔의 오렌지나무 정원은 밤늦도록 향기로웠고, 알 수 없는 이국 언어들이 캄캄한 귓가에 작고 예쁜 물고기들처럼 헤엄쳤다. 멋지기보다는 사랑스러운 저녁이었다.

포르투갈과 항공 협정을 체결했지만, 아직 인천에서 가는 직항 노선은 없다. 파리나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이스탄불 등 유럽의 주요 허브 공항을 경유해야 한다. 리스본까지는 경유 포함 대략 1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리스본에서 고속버스를 타면 4시간 만에 라고스에 도착한다. 사철 온화한 대서양 휴양지, 꼭 낚시가 아니더라도 요트 투어, 스노클링, 스쿠버 다이빙, 패들링 등 다양한 수상 레저와 함께 문어, 바닷가재, 조개, 갑오징어, 농어 등 맛있는 해산물 요리와 포트와인을 즐길 수 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라는 점에서 희소성도 충분하다. 지금 바로 당신이 가방을 싸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