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돌을 던지나
누가 돌을 던지나
  • 등록일 2019.06.12 20:17
  • 게재일 20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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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 마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칠 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물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예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뭔가를 쓰고 있다가 그들이 자꾸 다그치자 일어나서 “너희들 중에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고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앉아 땅바닥에 낙서(?)를 했다.

그 말을 듣고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 여자를 끌고 왔던 사람들은 하나 둘 자리를 뜨고 여자 혼자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예수는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고 물었다. 여자가 없다고 하자 “나도 너를 정죄(定罪)하지 않겠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했다.

이상은 기독교 신약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간음하다 붙잡혀온 여자는 매춘부인가 본데, 아마도 당시에는 매춘에 대해서 모세의 율법이 엄격하게 적용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매춘부를 돌로 쳐 죽이라고 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은 일이고, 용서를 하라는 것은 모세의 율법을 어기라는 것인즉 예수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시험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시작부터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걸었다. 지난 정권을 적폐로 규정하고 전 대통령들을 비롯하여 국정원장, 장관, 검찰청장 그리고 대법원장과 재벌총수들까지 온갖 꼬투리를 잡아 처벌하는 청산(?)을 단행했다. 적체된 폐단을 일소하겠다는 명분이야 그럴듯하지만, 문제는 그 적폐를 규정하고 척결하는 주체가 누구이고 어떤 잣대를 가졌느냐 하는 것이다. 외계인들이 와서 하는 일이 아닐진대, 누가 누구를 적폐로 몰고 처단을 하는 지에 대한 논란이 없을 수가 없다.

소위 ‘촛불혁명’ 세력의 지지와 성원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원래가 41%의 득표로 탄생한 정권인데다 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다시 과반수 이상이 찬성을 하지 않는 정권이니 그것을 절대적인 명분이랄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좌우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대립이 첨예한 시국에선 한 쪽의 주장이나 명분은 편파적일 수밖에 없고 대립과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하게 마련이다.

좌파들이 장악한 정부에서는 우파정권의 행위들 거의가 적폐로 보일진대, 나중에 우파가 정권을 잡게 된다면 지금 좌파정권의 적폐청산 행위 역시 적폐로 몰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고, 나라의 모든 부서와 기관은 물론 언론과 여론까지 장악을 하려고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는 예수의 심판이야말로 적폐청산의 전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적폐청산은 지난 일들을 모조리 들춰내어 저들의 잣대로 재단하고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정권의 적폐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이제부터는 폐단을 짓지 않겠다는 결의와 다짐을 실행하는 일이다.

과거청산을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준 지도자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 대통령을 들 수 있다. 반정부 투쟁을 하다 체포되어 종신형을 받고 27년간이나 옥고를 치렀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결성하여 용서와 화해를 강조하는 ‘과거청산’을 단행했다. 지난 시절 인권차별 반대투쟁을 잔악한 방법으로 탄압한 국가폭력 가해자들도 잘못을 뉘우치면 사면하는 정책으로 흑백간의 오랜 갈등과 충돌을 성공적으로 해결한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저들이 마치 정의의 사도인 양 무소불위로 권력을 휘둘러 상대를 적폐로 몰아가는 이 정권의 오만과 독선은 도를 넘은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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