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따스한 감정이 심장에서 혈관을 타고 그의 뇌까지 전달됩니다. 래리는 입술을 열어 그에게 묻습니다. “제가 도와 드릴 수 있을까요? (CAN I HELP YOU?)”

네 단어로 이뤄진 질문을 던집니다. 시선을 교환하던 사내는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방아쇠에서 뺍니다. 오랜 침묵이 흐르지요. 서서히 두려움에서 평온함으로 실내의 공기가 바뀝니다. 사내가 말합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겠소?”

래리는 조용히 괴한을 껴안고 등을 토닥입니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사내를 위해 래리는 속삭이듯 기도합니다. 맨 앞 좌석에 앉힌 다음 새해 맞이 모임을 계속 진행하지요. 밤 11시 50분. 10분만 지나면 새해입니다.

이라크 파병 군인 출신인 남자는 전역 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던 중입니다. 부인이 불치 병에 걸려 경제적으로도 극심한 곤경에 빠져 있었던 것이지요. 세상에 대한 분노, 치료되지 않은 정신적 상처들이 궁핍과 맞물려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겁니다. 그 싸늘하고 강퍅한 마음이 한 마디 질문에 녹아내렸습니다. “CAN I HELP YOU?”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배가 고픈데 밥을 먹을 때마다 요리사에게 음식을 만들어 달라 요청하고 줄 서서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고 팍팍한 세상일까요? 집 밥이라는 게 있어서 다행이에요. 요리사가 해 주는 식사보다 균형도 덜하고 맛도 부족할 수 있지만 우리는 집 밥을 먹고 든든한 일상을 살아가는 거지요.”

공감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습니다. 팍팍하고 힘겨운 세상에서 영혼이 힘들고 어려울 때, 굳이 전문가를 찾아가 상담 받고 문제를 해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서로의 영혼에 치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집 밥을 따스하게 끓여주는 것처럼 너와 내가 서로에게 상처를 감싸 주고 다독여 줄 수 있는 법입니다. 서툴고 미흡하지만 든든한 집 밥처럼 마음을 따스하게 만져줄 힘이 우리에겐 있습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언제나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돌출 행동이 크고 강할 수록 내면에는 감추어진 아픔과 상처, 고통과 슬픔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요. 래리 라이트가 긴박한 상황에서 던졌던 네 단어 질문이 그래서 위대한 것 아닐까요? 요즘 무언가 거리감이 느껴지거나, 돌출 행동을 하거나 거슬리는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다가가 이렇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제가 도와 드릴 수 있을까요?”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