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표의 ‘민생투쟁 대장정’을 마무리한 자유한국당이 장외투쟁을 넘어 ‘정책투쟁’을 펼치겠다는 노선 변화를 선언해 바람직한 코스를 택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한국당을 향해 정책경쟁을 제안했다. 그러나 한국당이 개최한 강원도 산불피해 후속 조치 대책회의에 당초 참석하기로 했던 공무원들이 일제히 불참한 것은 한심한 행태다. 더욱이 행정수반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야당을 노골적으로 공격한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강원도 산불대책을 위해 29일 소집된 자유한국당의 회의에 관계부처 차관들과 한국전력 관계자가 전원 불참했다. 이날 열린 한국당 산불대책회의에는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부처의 차관들과 김동섭 한전 사업총괄부사장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모두 불참했다. 당초 참석 입장을 밝혔던 일부 차관들마저 갑작스럽게 통보없이 불참하면서 한국당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부처가 안 챙기니 우리가 피해 주민들에게 들은 내용을 알려주겠다고 회의하자는 것이었다”며 “그런데 국회 정상화를 압박하려고 야당한테 공무원들을 안 보내는 게 청와대가 할 일이고, 여당이 할 일인가”라고 일갈했다.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공무원들이 윗선의 지시를 받고 야당을 물 먹인 것이라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 그것도 제1야당을 무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날 국무회의에서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야당에 대한 발언은 더 심각하다. 문 대통령은 “외교적으로 민감한 정상 간의 통화까지 정쟁의 소재로 삼고, 이를 국민의 알 권리라거나 공익제보라는 식으로 두둔하고 비호하는 정당의 행태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 “당리당략을 국익과 국가안보에 앞세우는 정치가 아니라 상식에 기초하는 정치여야 국민과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자유한국당이 정책 쪽으로 투쟁모드를 전환했고,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10대 민생법안을 내걸고 정책경쟁을 제안한 상황은 마비된 국회를 정상화하고 꼬인 정치를 풀어낼 매듭이 될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한국당이 초청한 민생정책 토론 현장에 공무원들이 일제히 불참하고, 대통령이 나서서 야당을 노골적으로 성토하는 그 속뜻은 대체 뭔가. 한국당의 정책 토론이나 민주당의 정책경쟁 제안이 비록 정치공세의 요소를 지녔다 해도 이렇게 무한대결 구도를 증폭시켜서는 안 된다. 더욱이 대통령이 막힌 정국을 풀어내기 위한 지혜를 쓰기는커녕 갈등을 덧내는 일은 옳지 않다. 솔로몬 법정에 놓인 ‘대한민국’ 옥동자가 애국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어려운 정치권의 어리석은 작태에 시나브로 죽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