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설'의 술 막걸리

막 걸러서 누구나 편하게 마시는 술 막걸리.

봄날이었다. “병아리 손도 빌린다”라고 할 정도로 바쁜 모내기 철이었다.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도, 병아리 대신 들일에 ‘동원’되었다. 새참으로 내놓을 막걸리 배달. 대단한 양은 아니고 작은 양은 주전자 둘이었다. 양은 주전자 주둥이에 젓가락 네댓 벌을 꽂고 제법 먼 논둑길을 따라 우리 논으로 막걸리 배달을 갔다.

저 멀리 모내기를 하는 우리 논이 보였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찰랑찰랑 막걸리가 움직였다. 주전자 주둥이로, 뚜껑 사이로, 막걸리가 조금씩 흘렀다. 아깝다. 귀한 술이 쏟아지다니. 논둑 언저리에 주저앉아 막걸리를 홀짝홀짝 마셨다. 의외로 달싹했다. 몇 모금을 더 마셨다. 그 순간이 기억의 끝이었다. 막 모내기가 끝난 어느 논의 어린 벼들이 비스듬히 보였다.

버드나무 그늘이었다. 겨우 실눈을 뜨다가 동네 아재와 눈이 마주쳤다. “쟈, 이제 술 깼는가 보다. 조선 천지 술은 니가 다 마셨제? 잘 잤나? 머리 안 아프나?”

완패. ‘막걸리와의 첫 만남’은 처참했다.

막걸리를 빚는 누룩.
막걸리를 빚는 누룩.

세상의 모든 술은 두 종류다. 발효주(醱酵酒)와 증류주(蒸溜酒)다. 발효주는 곡물이나 과일 등을 삭혀서 만든 술이다. 증류주는 발효주를 가열 처리하여 한차례 혹은 두어 차례 증류하여 얻는다.

막걸리는 발효주다. 재료는 쌀이나 밀, 좁쌀 등이다. 굳이 곡물을 고집하지 않고 과일로 빚어도 된다. 도수는 대략 18~19도 정도다. 탁주, 청주, 막걸리, 전통주 등등은 세금을 매기는 표준이 된다.

어느 칼럼에 “막걸리는 막 걸러서 편하게 마시는 술”이라고 했더니 반론이 있었다. “우리 술인 막걸리를 막 걸러서 편하게 마시는, 저질의 술로 깎아내리지 말라”는 반박이었다. “막 걸러서 편하게 마신다”라는 표현이 술을 깎아내리지는 않는다. 발효 과정을 거친 후, 반드시 숙성시킬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문에 대한 대답도 마찬가지다. 숙성을 시키든 않든 모두 막걸리다.

막걸리는 열린 술이다. 불확실성을 가진 술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막걸리는 늘 ‘불확실’하다.

누룩을 미지근한 물에 풀어서 고두밥과 섞는다. 옹기 등에 술을 담근다.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술이 괴기 시작한다. 뽀글뽀글 술이 숨을 쉰다. 발효 과정에서 생긴 이산화탄소 거품이다. 막걸리는 불확실하다. 같은 날, 한 사람이, 같은 재료, 같은 방식으로 담근 술도 맛이 다르다. 이전에 담갔던 술과 오늘 담근 술의 맛, 색깔 등이 다른 경우도 흔하다. 술을 대량으로 담고, 유통, 판매하는 경우엔 견디기 힘들다. 일본식 입국(入麴)방식을 택한다. 정제된 효모(酵母)를 고두밥과 섞는다. 밑술이다. 밑술을 다시 고두밥과 섞는다. 일본 방식은 일정한 맛을 지닌 술을 보장한다. ‘과학적’이라고 부른다. 일본 유학한 사람들이 ‘과학적 방식’을 널리 퍼뜨렸다. 늘 같은 술을 대량생산하는 일본식 ‘닫힌 방식’이다.

조선 중기의 명필 석봉 한호(1543~1605년)의 시조다.

짚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 불 혀지 마라. 어제 진달 돋아 온다.

아희야, 박주산채(薄酒山菜)일 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여러 종류의 막걸리.
여러 종류의 막걸리.

‘박주’는 막걸리다. 그중에서도 품질이 떨어지는 하급품이다.

인위적으로 만든 짚방석 대신 낙엽이다. 인위적인 솔 불 대신 어제 진 달이다. 낙엽은 짚방석보다 불편하다. 달빛이 솔 불보다 밝을 리 없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자연’이다. 가지런히 줄을 맞춘 ‘과학적인 인위’가 아니다. 한석봉은 어린 시절 가난하게 자랐지만, 벼슬살이를 한 사람이다. 유달리 가난하지는 않았다. ‘짚방석과 솔 불’ 정도는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주’ ‘낙엽’ ‘솔 불’은 자연스러운 자연이다. 마치 막걸리같이 자연스러운 ‘불확실함’이다.

발효주를 만든 다음, 곱게 거른 것은 청주다. 오늘날 ‘일본 사케’는 대부분 청주(淸酒), 맑은 술이다. 곱게 걸렀을 뿐 물을 타지 않았으니 도수는 16~17도 정도다.

‘전통주’의 이름을 달고 시판되는 우리 술 중에는 12도 언저리의 술도 있다. 발효 과정에서 발효를 멈춘다. 당화(糖化)된 부분들을 더는 알코올로 변하지 않게 한다. 흔히 발효를 ‘끊는다’라고 표현한다. 단맛이 그대로 술에 남는다. 도수는 낮지만, 단맛이 강하다. 술의 단맛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고, 단맛 때문에 이런 술을 싫어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 선조들은 ‘좋은 막걸리’와 질이 낮은 막걸리를 굳이 가르지 않았다. 좋은 막걸리는 순료(醇醪)다.

배송지(裴松之, 372~451년)가 주석을 단 ‘삼국지 오서 주유전(三國志 吳書 周瑜傳)’에 순료가 나타난다. 오나라 주유의 인간성을, 좋은 막걸리, 순료에 비유한다. 오(吳)나라 정보(程普)가 주유(周瑜)를 평한다. “주유와 사귀다 보면 마치 순료를 마신 것처럼 나도 모르게 절로 훈훈하게 취해 온다”고 했다. “마치 순료를 마신 것처럼 저절로 술에 취한다[若飮醇醪不覺自醉]”를 줄여서 ‘음순자취(飮醇自醉)’라고도 한다.

순료는 ‘진땡이 술’ ‘전국 술’ ‘물 타지 않은 무회주(無灰酒)’다. 양조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술의 신맛을 막기 위하여 풀을 태운 재 등을 술에 넣었다. 시중 유통 막걸리는 6도다. 쌀로 빚은 원주(原酒)는 18도 전후다. 찹쌀을 사용하면 19도 술도 가능하다. 물을 섞어서 술의 알코올 농도를 6도 정도로 낮춘다. 시중에 유통되는 막걸리는 물 섞은 막걸리다. 오래전에는 재 등을 넣었고, 지금은 농도를 낮출 요량으로 물을 섞는다. 물이나 재를 넣지 않은 술이 무회주다. 순료, 전국 술이다. ‘순(醇)’은 ‘농주(濃酒)’ 즉, 엷지 않고, 짙은 술이다.

한석봉은 박주도 좋다고 이야기했지만, 굳이 순료를 피하지는 않았다. 우리도 오래전부터 순료, 좋은 술을 알았고 또 마셨다.

조선 성종 2년(1471년) 6월, 대사헌 한치형이 17개 항의 상소를 올린다. 그중 환관[宦者, 환자]을 경계하라는 내용이 있다(조선왕조실록).

막걸리가 괴는 모습.
막걸리가 괴는 모습.

“대개 환자(宦者)는 무리가 모두 견식이나 성품이 영리하고, 말솜씨가 유창하여 밝혀주고, 안색(顔色)을 잘 살피고 엿보아 지취(志趣)를 받들고 비위를 낮추어 명을 받으면 어기고 거슬리는 근심이 없고, 일을 시키면 뜻에 맞고 만족스럽게 하는 능함이 있어, (중략) 누구인들 술수 속에 빠지지 않겠습니까? (중략) 순료(醇醪)를 마시면서 그 취(醉)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서(후략)”

순료, 좋은 막걸리의 폐해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역시 ‘조선왕조실록’ 세종 15년(1433년) 10월의 기록이다. 제목은 ‘술에 대한 폐해와 훈계를 담은 내용의 글을 주자소에서 인쇄하여 반포하게 하다’이다.

후위(後魏)의 하후사(夏候史)는 성질이 술을 좋아하여 상중(喪中)에 있으면서도 슬퍼하지 아니하며 좋은 막걸리를 입에서 떼지 않으니, 아우와 누이는 굶주림과 추위를 면치 못하였는데, 마침내 술에 취한 채 혼수상태로 죽었다.

순료와 다른 술은 촌료(村醪), 박주(薄酒), 산료(山醪) 등으로 표기했다.

시골의 막걸리, 엷고 가벼운 술, 산촌의 막걸리 등이다. 순료가 좋은 술이지만 촌료, 박주, 산료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갈암 이현일(1627~1704년)은 조선 후기 대유(大儒)다. 그의 시 ‘봄날 안국화 명하(命夏)와 시냇가에 노닐며’에 산료가 나타난다(갈암집 속집).

한낮이라 들판엔 안개와 이슬 걷혀/벗들과 천천히 거닐며 한가히 노닌다/산촌 막걸리 기울이매 호기가 일어나/내 삶이 이미 백발인 줄도 몰라라

큰 유학자도 막걸리를 한 잔 마시니 젊은 호기가 되살아난다. 산책을 하고, 산촌 막걸리를 나눠 마신 ‘벗’ 안명하(安命夏, 1682∼1752년)는 호가 송와, 갈암의 문인이다. 스승과 제자가 들길을 거닐며 거친 막걸리를 나눠 마신 것이다. 갈암 이현일은 고향이 영일(지금의 영덕)이다. 말년에 유배에서 돌아와 안동 임하, 영덕 등에서 지냈으니 막걸리를 나눠 먹은 장소도 이 부근일 가능성이 크다. 1700년, 안명하는 19세다. 술을 마셔도 될 나이였을 것이다.

조선 후기 문신 농암 김창협(1651~1708년)의 막걸리는 애틋하다. ‘농암집’ 제5권에, 헤어지며 마시는 시골 막걸리가 나온다. 제목은 ‘이별을 앞두고 즉흥으로 짓다’이다.

촌 막걸리[村醪] 사오니 병마개는 풀 뭉치/이별 술 따르는데 해 저문 산은 푸르네/그대도 봄 강 경치 좋아함을 알겠으니/미수(渼水) 정자에서 우리 다시 만나세

막걸리는 가리지 않는 술이다. 그중 으뜸은 막걸리를 던지다, ‘투료(投醪)’다.

‘여씨춘추 순민(呂氏春秋 順民)’에 전하는 이야기다. 전쟁터에서 장수가 막걸리를 한 병 선사 받았다. 차마 혼자서 먹기는 미안하다. 막걸리를 강물에 풀어서 병사들과 같이 마셨다. 막걸리는 ‘더불어 먹는’ 술이다. 하물며, 좋은 술, 나쁜 술로 가를 것도 아니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저작권자 © 경북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