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귀연수필가
송귀연
수필가

남편이 좋아하는 밥식혜를 담으려고 미주구리를 사왔다. 미주구리는 일본어에서 유래된 말로 물가자미의 경상도사투리이다. 미주구리라는 말이 더 친근감이 드는 것은 그 말이 주는 날 것의 어감 때문일 것이다. 밥식혜는 주로 경북 동해안지방에서 접할 수 있다. 생선과 밥을 적당히 섞어 삭혀서 만드는데 가자미와 오징어, 고둥을 사용하며 그중 최고로 치는 게 미주구리 밥식혜이다.

미주구리 밥식혜를 만난 건 어느 식당에서였다. 사실 접시에 담긴 밥식혜의 형태는 먹다 남은 밥처럼 이지러진 밥알이 다른 찬들과 섞여 있는 모습에 영 비위가 상했다. 게다가 고춧가루 범벅이어서 바라보기만 해도 속이 매워 진땀까지 흘렀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도 맛있게 먹는 걸 보고 조심스럽게 한 점 먹어보았다. 그 순간 최초의 선입견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새콤달콤하면서 알싸한 맛, 적당히 발효되어 쫄깃해진 생선과 아삭거리는 무의 식감은 담백하고 신선했다.

어릴 적 아버지는 미주구리 생선회를 즐겨먹었다. 아버지는 미주구리회가 먹고 싶을 때면 유난히 장날을 손꼽았다. 시장가거든 잊지 말고 꼭 사오라며 집을 나서는 엄마에게 신신당부했다. 아버지는 미주구리 회를 안주로 막걸리 한 사발을 맛있게 들이키곤 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캬! 하며 미역과 함께 버무린 회를 한 입 가득 먹는 모습은 어린 내가 봐도 군침이 돌았다. 가자미는 한자로 비목어(比目魚)라 하며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서는 첩류라고 했다. 미주구리는 수심 이백 미터 깊이의 모래나 펄로 된 해저에 서식한다. 우리나라 연안전역에서 잡히지만 동해의 것을 으뜸으로 친다. 차가운 바다에서 자란 것일수록 살이 단단하고 맛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서 가자미는 맛이 달고 독이 없어 허약함을 보강하고 기력을 북돋아주는 생선이라고 한다.

미주구리 밥식혜는 가을에 담으면 그 맛이 한결 더 난다. 가을엔 육질이 쫀득할 뿐 아니라 제 철인 가을무를 넣으면 단단해서 식혜가 무르지 않고 찰지기 때문이다. 깨끗이 손질한 미주구리를 소금과 엿기름을 뿌려 하루정도 발효시켜 둔다. 잘 발효되었으면 고슬고슬한 밥과 소금에 절인 무, 고춧가루, 생강, 마늘, 엿기름가루를 넣어 골고루 섞은 다음 사나흘 더 묵히면 맛있는 밥 식혜가 된다.

미주구리는 가자미보다 기실 품위가 떨어지고 가격도 싸다. 외모로만 천한 취급을 당한다. 저라고 뭐 자존심이 없겠는가? 한번쯤 성골이나 진골인 광어, 도다리, 서대를 꿈꿔 본적은 없겠는가? 그러나 결코 헛된 욕망에 이끌려 자신의 자리를 일탈한 적이 없다. 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문장(文)이 내용(質)보다 승하면 사치스럽고 질이 문보다 승하면 거칠다는 뜻이다. 미주구리는 질이 문보다 승한 생선이다. 사치스러운 형식보다 내면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기며 친서민적이다.

물이라는 접두사는 기준치보다 모자라거나 얕잡아보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물박달나무, 물봉숭아, 물양지꽃처럼 사물과 비교하여 비슷하지만 정통이 아닌 것을 일컫는다. 물질지상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에서는 성공한 사람만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한다. 이른바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어지고, 사람들은 주류가 되기 위해서 경쟁하고 이기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다. 세상을 이끌어가는 힘은 소수의 주류가 아니고 다수의 비주류이다. 보통이라는 단어는 일견 힘이 없고 나약해보이지만 그것들이 뭉쳤을 때는 특별함을 뛰어넘는다. 물가자미야말로 갑남을녀이고 장삼이사이며 필부필부가 아닐까. 며칠이 지나자 밥식혜가 먹음직스럽게 익었다. 새하얀 쟁반에 정성스레 퍼 담는다. 식탁주변을 오락가락 하던 남편이 얼른 의자를 당겨 앉는다. 입안으로 한술 밀어 넣기 바쁘게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리고는 “임금의 수라상이 이만할까?”라며 괜한 너스레를 떤다. 곰삭힌 미주구리 한 점을 집어 들자 동해의 깊고 푸른 파도소리가 쏴아! 하고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