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여전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북한의 인권문제나 식량문제에는 관심이 부족하다. 북미 하노이회담 결렬 후 북한은 최근 두 번이나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북한은 방어용 훈련이라고 하지만, 북미 대화 촉진을 위한 방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에 앞서 북한 당국은 그들 특유의 자존심을 버리고 유엔 등 국제기구에 식량지원을 요청하였다. 북한 인구 2천500만 명이 배불리 먹으려면 600만t의 식량이 요구되는데 북한은 지난해 더위와 재해로 식량생산이 460만t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이 스스로 ‘핵 보유국’임을 선언하면서도 식량문제도 해결되지 못함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흔히 북한의 3대 경제 위기를 외환, 에너지, 식량이라고 한다. 북한의 식량위기는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시부터 시작되었다. 북한 주민의 식량부족은 기아문제로 연결되며 북한주민들의 저항까지 초래할 심각한 인도적 문제이다. ‘위대한 수령국가’이지만 배고프게 하는 수령을 따를 수 없는 주민들은 탈북하고 있다.

일찍이 김일성은 ‘이밥에 고기 국 먹고, 비단옷 입고 기와집에 사는 인민의 꿈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꿈은 김정은 시대에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이후 통계는 확실치 않지만 100만 명 이상의 인민이 아사했다는 보고도 있다. 배급제는 사실상 폐지되고 주민들의 식량구걸 행렬이 거주이전의 자유로 연결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이에 당황하여 여러 식량증산사업을 벌였으나 아직도 해법을 마련치 못하고 있다. 북한은 집단농장의 생산성 향상을 위하여 관리 인원을 25명 내외에서 대폭 줄여 5∼10명의 가족영농형태로 바꿔 보았으나 별 성과가 없다. 북한에서 개인 집 옆의 30평 내외 남새밭은 농작물이 잘 되는데 집단 농장의 농사는 한계에 이른지 오래다.

개인의 소유욕을 막아버린 사회적 소유형태의 병폐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하천부지나 야산의 소 토지개간을 허용했으나 식량의 증산에는 크게 기여치 못했다. 오히려 북한의 늘어나는 시장이 아사자를 구할 수 있었다. 북한의 집단 소유 형태를 바꾸지 않고는 식량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핵 보유국’이라 선전하는 북한이 특유의 자존심마저 버리고 대외 식량지원을 요구하게 되었다. 북한은 종래 그들의 경제 위기를 ‘미 제국주의의 압제’ 때문이라고 선전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의 주장이 주민들에게 먹혀들리 없다. 북한 김정은은 핵 개발을 통해 대미 협상 방식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도 북한의 비핵화 선언을 신뢰치 못하고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대북 제재를 더욱 강화하는 채찍을 사용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이러한 전 방위적 제재 강화는 북한의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북한이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나 세계 식량프로그램(WFP)을 통해 식량사정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뒤틀어진 남북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대북 식량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인도적 대북지원은 유엔의 제재 범주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약 50만t 규모의 식량지원을 북한에 제공할 전망이다. 트럼프도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에서 이번 남한의 대북 식량지원은 무방하다는 입장을 천명하였다. 그러나 국내의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한 여론은 찬반이 갈리고 있다.

보수적 여론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진보적 여론은 남북의 화해를 위해 인도적 식량지원은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여야는 이 문제에 합의가 있어야 갈라진 여론을 잠재울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화(和)자에서 보듯이 벼(禾)를 같이 먹는데(口)에서 화해는 출발한다. 북한에 대한 대북 식량지원이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 개선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