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도 집착한 문어

묵은지 문어구이. 묵은지의 곰삭은 맛과 문어의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동양에서는 문어를 즐겨 먹는다. 일본 ‘다코야키(takoyaki)’는 문어가 들어간 풀빵이다. 중국도 오래전부터 문어를 먹었다. 우리는 문어를 귀하게 여겼다. 제사상에도 오른다. 귀한 선물로도 쓰였다. 고려 시대, 목은 이색(1328~1396년)도 동해안 영일만에서 잡은 문어를 선물로 받았다.

문어(文魚)는 머리가 크다
머리가 크니 공부를 잘한다? 
그래서 문어라고 부른다는 속설이 있다
머릿속에 먹물이 들어 있어서 
문어라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 목은, 영일만의 문어를 선물로 받다

‘목은고_시’의 일부다. 제목은 ‘동경(東京)의 윤공(尹公)이 전운(前韻)에 화답하면서 문어(文魚)를 보내왔기에 붓을 달려 답하다’이다. ‘윤공’이 누군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동경’은 경북 경주다. 경주에서 보낸 선물이 문어다.

(전략) 적을 소탕할 땐 맹호가 양 떼를 습격하듯/(중략) 삼한이 모두 그 공적에 고개를 숙인다오/(중략)전쟁을 종식할 계기가 이제 마련됐는지라/보내오신 고기 이름도 바로 문이로구려

‘윤공’에 대한 찬사다. 목은은 벼슬살이 중 큰 내란을 겪은 적이 없다. ‘윤공’은, 왜구(倭寇) 소탕 차 파견된 군대의 장수였을 가능성이 크다. 고려 말기 ‘삼한’은 극성스러운 왜구의 노략질로 고통을 당한다. 얼마나 왜구가 많았으면 가짜 왜구, 가왜(假倭)도 등장한다. ‘동경(경주) 윤공’의 ‘적’은 경상도 동남 해안가를 침략한 왜구였음을 짐작케 한다.

문어(文魚)는 머리가 크다. 머리가 크니 공부를 잘한다? 그래서 문어라고 부른다는 속설이 있다. 머릿속에 먹물이 들어 있어서 문어라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늘날의 포항, 감포 등 영일만 일대는 영일현이었다. 경주권이다. 경주에서 보내온 문어는 이 지역 것이었으리라. 목은은 동해 남부 지역과 인연이 깊다. 태어난 곳이 경북 영덕군 영해면 괴시마을이다.

중국 ‘괴시(槐市)’의 이름을 따서 고향 이름을 괴시마을로 바꾼 이도 목은이다. 일찍이 떠났지만, 목은은 태어난 곳, 어머니의 고향을 평생 잊지 않았다. 고향 가까운 곳에서 문어를 보내왔다.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

유럽인들은 문어를 즐겨 먹지 않는다. 스페인 요리 중에 문어를 이용한 ‘뽈보 아벨라(pulpo a feira)’가 있지만, 유럽인들에게 문어는 ‘악마의 물고기(devil fish’)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하는 바다 괴물도 문어의 모습이다. 대왕 문어는 배를 침몰시키기도 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외계인은 흔히 문어의 모습이다. 민대가리에 다리가 여럿으로 괴기스럽다. 성경에 나오는 “비늘 없는 물고기는 먹지 말라”는 경구도 유럽인들이 문어를 피하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인들이다. 먹는 이도 있고, 먹지 않는 이도 있다. 임진왜란 때 원병을 이끌고 조선에 왔던 이여송(李如松, 1549∼1598년)은 ‘먹지 않는 이’였다. ‘성호사설_제5권_만물문’에 나오는 ‘이여송의 문어 이야기’다.

조금 후에 문어갱(文魚羹)을 올렸는데, 문어란 것은 바로 팔초어(八梢魚)다. 그런데 천장도 역시 난처한 빛을 보이고 먹지 않았다.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이 문어는 우리나라에만 생산되는 까닭에 천장이 처음 보게 된 것이다”고 한다./ 내가 천사 동월(董越)이 지은 조선부(朝鮮賦)를 보니, 그의 자주(自註)에, “문에는 바로 중국 절강(浙江)에서 나는 망조어(望潮魚)이다.”라고 하였다./그렇다면 임진년 난리 때 이여송(李如松) 무리들은 대부분 중국 북쪽 지방의 사람인지라, 남북 거리가 동떨어지게 멀기 때문에 강회(江淮)의 어물을 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중략) ‘장거(章擧)와 석거(石距)라는 두 종류가 있다’ 하였다./(중략) 이 장거와 석거란 것은 우리나라에서 나는 문어와 낙제(絡蹄) 따위처럼 생긴 것인 듯한데, 중국서도 역시 진귀(珍貴)하게 여긴다. 낙제는 속명 소팔초어(小八梢魚)라는 것이다.

이여송은 요동성 철령위 출신이다. 바다와 멀다. 생선도 귀하다. 서해안 북쪽 지역은 문어가 생산되지 않는다. 이여송은 평소 문어, 문어국을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입맛은 보수적이다. 어린 시절 먹지 않았던 음식을 나이가 들어서 먹는 것은 힘들다.

“(문어가) 우리나라에서만 생산된다”는 표현은 틀렸다. 중국인들도 문어를 좋아하고 귀하게 여겼다. 윗글에 나타나듯이, 중국 절강성의 망조어는 곧 문어다. ‘장거’는 문어, 석거는 낙지(낙제)다. 문어는 다리가 8개다. 이름이 팔초어인 이유다. 팔초어 중 작은 것, 즉 소팔초어는 낙지다.

교산 허균도 ‘성소부부고_도문대작’에서 ‘문어[八帶魚]: 동해에서 난다. 중국인들이 좋아한다’라고 했다. 이여송과 달리, 중국인들 특히 남방의 바닷가 지역에서는 문어를 먹었다. 팔초어(八梢魚), 팔대어(八帶魚) 등으로 혼란스럽게 표기한 것도 재미있다.

◇ 뇌물로 받은 문어 두 마리

세종 14년(1432년)에는 ‘문어 선물’이 문제를 일으킨다. 시작은 강원도 고성 수령 최치의 탐학, 뇌물수수, 거짓 수사였다. 최치를 수사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번진다. 드디어 대사헌 신개(1374∼1446년)에게 불똥이 튄다. 대사헌은 종 2품, 차관급이다. 죄목은 ‘문어 두 마리 뇌물수수’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4년(1432년) 6월 25일의 기록이다. 제목은 ‘세 의정 등과 허조 등을 불러 논의하다’이다.

(전략) 치(値, 최치)의 말이 ‘문어(文魚) 두 마리를 대사헌 신개에게 주었다.’ 하고 신개는 받지 않았다고 하니, 이것은 의심할 만한 일이다. (중략) 개(신개)는 풍헌관(風憲官, 대사헌)으로 있으면서 이와 같은 일이 있었으니 세상의 여론에 어떻겠는가. 천관(遷官)시킬 것인가, 그냥 둘 것인가 하니, 정초·신상 등은 아뢰기를, “(중략) 개가 〈남의 과실을〉 규찰(糾察)하는 직임에 있으니(중략) 벼슬을 옮기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하고, 안순·허조·권진·맹사성 등은 아뢰기를, “권세 있는 사람이면 온 집안의 하인들까지가 다 세가(勢家)의 종이라는 것을 자랑하면서 혹은 남이 증여(贈與)하는 물품을 함부로 받아서 제가 사사로이 써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허다하게 많습니다. 개는 용렬한 사람이 아닙니다. 어찌 남몰래 그의 뇌물을 받고는 겉으로 안 받았다고야 하겠습니까” (중략)하매, 사성 등의 의논에 따랐다.

사건을 수사하는 중에 ‘피의자 고성 수령 최치’로부터 “대사헌 신개에게 문어 두 마리를 선물로 주었다”는 자백을 받아낸다. 대사헌 신개는 “절대 받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한다. 그 사이 이 사건에 얽혀든 중앙과 지방의 관료들은 모두 용서받는다. 문제는 신개다. 대사헌이다. 남들 잘못을 들추고, 탄핵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비록 문어 두 마리지만 가벼이 지나칠 수 없다.

신하 중 일부는 ‘대사헌 신개’의 죄를 묻자고 주장한다. 맹사성 등은 반대한다. 논리가 재미있다. ‘배달 사고’다. 권력자 집안의 종이 권력자를 대신하여 뇌물을 받는 일이 흔하다고 이야기한다. 신개의 경우도 마찬가지. 최치는 신개에게 문어를 줬다고 하고, 신개는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문어 두 마리는? 배달부인 신개 집 하인의 배달 사고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문어국이 먹음직스럽다.
문어국이 먹음직스럽다.

◇ 혼란스러운 돌문어와 피문어

냉동, 냉장이 없던 시절이다. 공물로 올라오는 문어는 대부분 말린 문어였다. 중국으로 보내는 문어도 대부분 건문어였다. 세조 6년(1460년) 8월, 중국에 갔던 사은사 김예몽이 칙서를 가지고 온다. 칙서 내용 중에 “문어(文魚)는 다만 모든 사신이 올 때 혹은 4, 5백 마리씩 혹은 7, 8백 마리씩 바쳐 오도록 하라”는 부분이 있다. 한양 도성에서 중국까지는 최소 3개월의 거리다. 말린 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희한한 음식에 관심이 많았던 연산군은 문어에 대해서도 특이한 집착을 보인다.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5년(1499년) 11월 7일의 기록에는 ‘강원도 관찰사에게 생 문어(文魚)를 잡고 그 먹일 물건을 많이 구하여 들이라고 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희한한 식재료를 탐하는 것은 폭군의 길이다.

문어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눈다. 피문어와 돌문어다. 피문어는 붉은 색깔의 문어다. 돌문어는 남해안 돌 틈에서 잡은 문어다. 삶아도 질긴 문어라서 딱딱한 돌문어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진 않다. 피문어는 동해안 깊은 바다에서 잡는다. 크기가 크다. 대문어라고도 한다. 서, 남해안의 돌문어는 작다. 피문어, 돌문어의 맛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이다. 이제 피문어, 돌문어의 구분도 혼란스럽다. 동해안인 경북 포항 호미곶의 명산품 문어는 돌문어다. 이른바 ‘호미곶 돌문어’다. 해안가 얕은 곳에서 잡는 문어다.

‘경북매일’ 2017년 9월 21일 기사다. 제목은 ‘관광객 미각 사로잡는 호미곶의 돌문어’.

(전략) 연 500t만 잡히는 귀한 특산물… 육질 쫄깃하고 단단/ 호미곶돌문어홍보판매센터 개장, 다양한 수산물 판매/ 포항시는 국내 최대 문어 생산지다. 특히 육질이 쫄깃하고 단단해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호미곶의 특산품 ‘돌문어’는 어획량 연간 500여t으로 희소가치가 매우 높고 품질이 우수하다. 이에 포항시는 최근 호미곶면 대보리에 ‘호미곶 돌문어 홍보판매센터’의 문을 열고 호미곶 특산품의 전국적인 홍보에 나섰다. (후략)-고세리 기자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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